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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17일

 

 

전통생활문화의 지혜와 현대적 가치

-지나간 것들의 일상적 교훈-


<목차>

1. 들어가며

2. 전통 속의 나

3. 전통 속의 지혜

-농민들의 집, 민초의 삶

-변화된 구조는 변화된 삶

4. 전통 속의 교훈


 

1. 들어가며

 

현재 우리의 역사적 사료들은 주로 양반이나 왕족의 삶을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다. 즉 역사는 힘 있는 자에 의해 기록된다는 것을 반증한다. 여기에서 많은 의문들이 솟아나온다. 힘없는 민초들의 삶은 그동안 없었던가? 평범한 이들의 삶은 역사가 될 수 없는가? 사소한 것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는 우리의 역사 속에서 인정되고 있는가?

 

이러한 물음에 대하여 우리는 스스로 역사의 개념을 전통이라는 언어에 묶어 생각 없이 답습한다거나, 한정된 개념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일이다. 역사란 그 시대를 말하는 총체적인 것이 아닌가? 이러한 측면으로 볼 때 우리의 역사기록은 지극히 한정된 계층의 삶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가치의 기준에 있어서까지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역사의 중요성을 생각해 볼 때 다양한 삶의 모습들이 기록되어야 할 것이다. 본 과제물의 부제 역시 역사에서 소외된 민초들의 생활 모습을 개인적인 경험을 토대로 기술하고자 한다.


2. 전통 속의 나


전통생활사에 대한 과제 선택을 위해 전통 민속 마을이나 절 등 유적지 여러 곳을 남편과 함께 다녀왔다. 공통의 느낌은 모두 숨결이 느껴지지 않은 기술적으로 잘 박제된 역사물이라는 것, 그저 상업적 상품으로 전시품이 되어버린 것에서 내가 찾고자 하는 그 어떤 느낌이나 감정이 생겨나질 않는다. 고민 하던 중, 몇 해 전 농가주택을 구입할 당시의 희열이 떠올랐다. 먼 곳에서가 아닌 지금도 면면이 이어가고 있는 나의 삶, 이것이야 말로 가장 솔직하고 실감나는 생활이 아닌가?! 역사에서 소외된 민초들의 삶을 60~70년 전에 지어진 농가에서 살고 있다는 것으로 그 의미를 대신하기는 어렵겠지만 평범한 민중으로서 이 시대의 역사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살아가고 있으니 과감히 주인공이 되어 본다. 오래 전 집주인의 삶에 나의 오늘을 이어 새로운 전통 생활사를 만들기로 했다.


3. 전통 속의 지혜


* 농민들의 집, 민초의 삶


몇 해 전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의 귀농을 결심하면서 살 집을 찾던 중 한 농가를 구입하게 됐다. 그 집은 60년이 훨씬 넘어 70년이 되어가는 아주 낡은 집이다. 일부는 이미 풍화에 훼손되어 무너지고 쓰러진 곳도 있지만 집 주인은 곧 새 집을 지어 이주할 것이기에 수리 하지 않았다. 세 채로 구성된 작은 농가를 매입하여, 그 중 가장 큰 건물을 수리했다. 원형의 뼈대는 그대로 살리고, 훼손이 많이 된 볏짚황토 외벽만 모두 헐어 새로 시멘트 벽돌을 쌓아 지붕을 떠받치는 형태로 공사를 했다. 기름보일러로 난방을 교체하고, 외벽도 스티로폼으로 단열하여 추위를 대비했다. 수리를 마치고 나니 내부는 현대식으로 바뀌었지만 외부는 예전의 농가 모습을 그대로 유지했다. 원형을 최대한으로 보전하려 했지만 훼손이 심해 결국 문명과 타협을 이룬 것이다. 오래된 것들은 여기저기서 쓰레기가 되어 쏟아져 내리고 6~70년의 시간들은 트럭에 실려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다. 전통 생활이 변화되는 순간이다. 아쉬움이 느껴졌다.


* 변화된 구조는 변화된 삶


작은 건물은 사랑채로서, 흙벽돌로 지어졌지만 대체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편이다. 창호지를 바른 문은 여닫는데 그다지 불편하지 않으며, 내부는 두 칸짜리 방이 한 칸으로 터져 있는 것으로 보아 가족 수가 변화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방마다 합판으로 천정이 되어 있는 걸 보니 이 집도 20여 년 전 유행한 베니다 합판으로 흙이 떨어지고 벌레가 나오는 천정을 가렸나보다. 이때부터 새 문명을 받아들인 듯하지만 나는 옛 것이 좋다. 합판과 황토 집은 왠지 어울리지 않아서 천정을 뜯어내고 서까래가 드러나도록 하였다. 전등도 전 주인이 쓰던 것을 깨끗이 닦아 그대로 달았고, 난방도 온돌방 그대로 부엌의 아궁이에 불을 지피도록 하였다. 아궁이 앞에 앉아서 나무로 불을 때면 어느 덧 방바닥이 따끈따끈 해온다. 그 옛날 6~7명의 가족들이 추운 겨울날 아랫목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던 생각이 난다.

 

지붕은 슬레이트 지붕이지만 그 속에는 60년 된 초가가 아직도 덮여 있다. 그래서인지 겨울에 외풍이 없고 여름에는 시원하다. 특히 황토 벽돌집은 그야말로 선풍기가 필요 없다. 방문을 열면 작은 툇마루도 있다. 사대부집 툇마루처럼 곧은 나무로 만들어지진 않았지만 투박하게 이어져 만들어진 쪽마루는 오랜 시간 가족들이 들고난 흔적으로 반들반들 달아있다. 마루를 덮고 있는 긴 처마에는 한여름 햇볕도 걸리고 만다.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방문을 열면 곱게 다져진 네모난 마당이 있다. 참으로 오랜만에 밟아 보는 흙이다. 회색 콘크리트의 세상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처마 밑에는 노란 민들레꽃과 제비꽃도 피어 있다. 흙은 살아 있다. 생명이 살아갈 수 있도록 바탕을 만들어 준다.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워 열매를 맺고 씨앗을 품어 다시 그 대를 이어간다. 계절이 순환되듯, 사람이 자녀를 낳아 그 대를 이어 가듯 흙은 생명을 이어 준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 생명을 콘크리트로 모두 덮어버린다. 불편하고 지저분해서란다.

 

사랑채 옆에는 작은 토방이 있다. 이곳은 곡식을 수확하여 보관했던 곳으로 쓰인 것 같다. 토방 안에는 농사에 필요한 생활 도구와 바구니들이 가득히 걸려 있다. 황토로 지어져 습도조절이 자동이다. 그래서인지 바구니들은 원형 그대로 잘 보관되어 있다. 바구니들을 보면서 이 집의 주인은 어떤 농사를 지었는지, 생활수준이 어떠했는지, 성격은 어땠는지가 보인다. 참으로 알뜰하고 부지런하며 손재주가 많은 사람인 것 같다.

 

그 옆에는 창고가 있는데, 문 옆으로 콘크리트 여물통이 자그마니 걸려 있는 걸로 보아 이전에 외양간으로 사용했던 듯 하다. 두세 마리 정도 키워 자녀들의 학자금으로 사용하지 않았을까? 고단하기만하지 지금이나 옛날이나 돈이 되질 않은 농사여서 자녀들의 학교 보내기는 다른 수입에 의존해야했던 힘들었던 시절 아닌가? 집집마다 가축 한 두 마리씩은 키웠던 기억이 새롭다.

 

그 창고 한쪽 구석에 항아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추운 겨울에 김장김치가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리라 짐작된다. 그 옆으로 농사를 짓기 위한 농기구가 가지런히 놓여있다. 어떤 농사를 어느 정도 짓는지 가늠된다.

 

본 채의 부엌에는 가마솥이 걸려 있고 그 밑에는 꺼멓게 그을린 아궁이가 보인다. 안방으로 드나드는 작은 방문도 있고, 특이 한 것은 부뚜막 끝으로 항아리를 묻어 놓은 채 콘크리트를 발라버린 것이다. 그러니까 영원히 그 자리에 머물도록 한 것이다. 그곳에 무엇을 담아 뒀을지 궁금하다. 쌀독인지 김칫독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음식물을 보관하려 했는지 알 수 없다. 부엌의 문은 안주인의 성품을 간직하고 있다. 참으로 인내심이 많은 여인이 아닐까? 아궁이에서 나온 그을림과 가족을 위해 음식을 나르며 열고 닫은 횟수의 흔적이 고스란히 황소바람이 들어올 정도로 문틈을 벌어지게 했다. 얼마나 추었을까. 오래전 연인을 만난 듯 애틋하고 짠하다.


4. 전통 속의 교훈


이 집은 전 주인의 어르신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참으로 가난한 민초였음을 여기저기서 느끼게 한다. 민초의 삶이 그대로 남아 깃든 여러 가지 살림도구들은 이들이 사는 정도가 어떠했으며, 어떤 일을 하며 살아갔는지, 어떤 성품이었으며 어떤 재능이 있었는지도 고스란히 말해준다. 또한 문명의 풍요와 편리함에 길들여져서 부족과 인내를 모르고 살아가는 현대의 모든 이들에게, 특히 오늘을 사는 나에게도 무엇을 요구하는 듯하다.

 

오래된 농가를 구입할 당시 많은 지인들이 만류했지만 나는 귀중한 보물을 발견한 듯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 이유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민중의 생활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박제된 역사가 아닌 살아 숨쉬는 민초의 삶이고 싶기 때문이다. 방에 누워 천장을 쳐다보면 울퉁불퉁 휘어진 서까래가 황토와 함께 가지런히 줄지어져 있다. 주인의 지혜와 기지와 예술혼이 느껴진다. 또한 부지런하고 성실하며 그 어떤 것에서도 자립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집 곳곳에서 느껴진다. 자본주의와 상업주의에 길들여진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은 언제부터인가 그 어느 것도 스스로 해낼 수 없는 의존형 인간이 됐다. 한 세기도 지나가지 않았는데 이렇듯 괴리가 클까.

 

또한 나무의 생김을 거스르지 않고 그대로 활용한 것을 보면서 자연스러움의 중요성을 깨닫게 한다. 주변과의 어울림, 그 조화로움은 인간관계에 있어 첫 번째의 덕목이 아닌가? 삐뚤빼뚤 생긴 그대로를 인정하고 그 필요에 의해 적절히 사용하는 옛 선조의 넉넉한 너그러움과 이해심은 오늘의 획일적인 사회에 다양성의 아름다움을 생각하게 한다. 오늘의 복잡 다양한 사회 문제들의 해답은 오래된 것에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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