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리선녀 이야기/마리선녀 사색

귀농 3년 차에서-현실생활은 농촌에서, 생활인식은 도회적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0.

 - 2006년 8월 3일 마리선녀 씀 -

 

 

귀농 3년 차에서

-현실생활은 농촌에서, 생활인식은 도회적

 

 

작년까지의 우리 연봉은 350만원이었다.
 
농사를 지어 그 생산물을 판매하고서야 겨우 돈을 구경한다.
올해도 벌써 8월인데 아직 농산물을 판매해서 얻은 수익을 만져보지 못했다.
 
얼마 전 감자를 캐서 1박스에 16,000씩 친구에게 9박스를 강매, 서울로 보냈다.
그 수익은 144,000원, 올 첫 농산물 판매 수익이 되는 셈이다.
긴 장맛비로 아직 다 못캔 감자까지 판매한다면 모두 합해 약 300,000원이 될까.
 
하지만 걱정이 또 있다.
아직 땅 속에 있는 나머지 수익이 될 감자를 캔다고 해도 팔 곳이 없다.
마리산은 그냥 땅에 두고 갈아엎을까 생각한다.
캐는 수고비보다 팔아서 얻을 수익이 적기 때문이다.
 
무농약 인증까지 받았지만 농협에서는 여전히 관행농(농약살포)의 수매가와 별 차이를 두지 않는다.
물론 중간상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경매시장도 비슷한 실정이다.
이래저래 궁리 중이지만 여차하면 차에 싣고 가까운 근교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팔아볼 생각이다.
마리산과 아직 상의하지 않았지만 그렇게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올해는 작년 수준의 연봉도 되지 않을 것 같다. 
 
농민들은 농산물을 생산하고 그 중 재일 좋은 것으로 골라 돈으로 바꾼다.
그 돈으로 생활을 해야하는데 우리의 연봉으로는 생활 공과금도 충당하기에 부족하다.
노동비와 재료비 및 씨 값을 두루 포함한 농산물 판매 수익, 따지고 보면 마이너스다.
일단 먼저 들어간 비용에 대한 환산을 하기 시작하면 지금의 생활을 접어야 함이기에 어쩌면 외면하고 싶은 것은 아닐지...잘 못 됐다는 것을 알면서도 냥 판매대금을 전 수익으로 계산한다.
 
그런데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졌다.
드디어 작년 12월, 도시서부터 꿈꿔 온 자연친화적인 삶을 잠시 뒤로 하고 마리선녀의 전직인 디자인 일을 다시 부활, 이 난국을 해결하기로 했다.
그것이  바로 바로기획, 도시에서부터 사용하던 상호이다.
넉넉하지는 않지만 바로기획의 수입으로 올 농사 초기비용과 8월 현재까지 생활을 그럭저럭 해나가고 있다.
하지만 분명 농민으로써 지금까지의 삶에 대한 반성이 필요하다.
 
결혼하여 처음으로 작년 가을에 친정어머니께 쌀 40kg을 드렸다.
어머니는 쌀값의 두 배로 한가마니 값을 내게 도로 주신다.
물론 마리산은 모르는 일, 나의 비상금이 됐고 그 비상금은 며칠 못가 생활비로 사라졌다.
어머니께서는 예전에 농사를 지어보셨다며 농사일도 도와주지 못했거니와 농부는 농산물이 돈이고 월급이라고, 가을겆이로 다음해 가을까지 1년을 살아야 하는데 다 팔아야 얼마되지도 않을 그것을 어떻게 그냥 먹냐며 절대 안 된다시며 형제들께 모두 돈을 주고 사라며 명령까지 내리셨다.
덕분에 작년에는 형제들과 그 주변분들을 소개받아 여러탕(트럭이 없어 코란도로 실어날음)의 강원도 여행?을 통해 어렵지 않게 생산의 90%를 모두 판매했다.
 
친정어머니의 말씀이 맞다.
농부는 농산물 외에 달리 수입이 들어올 곳이 없기 때문에 그것이 수입이요 연봉이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두 해 동안 우리집 농산물 중 좋은 놈을 골라 인심을 썼고, 돈이 없으면 카드 빚을 내어서라도 배송비는 물론 손님접대를 했었다.
또한 손님이 올 때면 농사일이 바쁘고 힘들어 식사 대접이 부실할 것 같으니 외식으로 대신해야 했고 그 비용은 또 어디서 나오겠는가.
이 모두가 분수에 맞지 않게 살았으며, 더우기 농촌에 맞는 경제 인식 조차 없었다.
 
친절한 인심과 배려의 결과로 얻는 "좋은 사람들", 그 뒤에 감당해야할 결과는 그리 좋지만은 않았다.
현실 만족을 위해 우선 쓰고 본 카드결제는 독촉으로 생활을 어둡게 하고 의욕조차 떨어지게 했으며 피를 말리는 전화 독촉으로 정상적인 생활조차 어렵게 만들었으며, 끝내는 현실에 대한 회의마져 느끼게 했다.
 
지금의 암담함이 농업의 문제만일까?
농산물이 값이 없어서 우리 삶이 빈곤할까?
다른 문제는 없는 것일까?
우리 삶의 태도는 어떠한가?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며 지금의 삶을 관찰, 점검해 보았다.
그리고 주변 이웃 농민들의 삶을 살펴보았다.
 
농업의 어려움도 있지만 그보다 더 많은 부분이 삶의 태도와 농촌경제에 대한 인식부재의 문제임을 깨달았다.
그와 더불어 이웃 농민들의 삶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됐다. 즉 여전히 도회적인 생활습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수입과 지출이 불균형을 이루고 있음에도 도시의 생활습관을 유지하고 있었다.
수익 창출은 농촌 수준, 지출은 도시적 수준을.
아무리 많은 재산이 있다한들 이렇게 살다가는 얼마지나지 않아 텅 비게 될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 아닌가.
 
헬랜 니어링과 스콧 니어링은 농촌의 삶은 절제된 생활이어야 가능하다고 했다.
옛 말에도 "벌기를 자랑말고 쓰기를 자랑하라" 했고 이 또한 지출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수입과 지출을 따져 살지 않으면 농촌은 도시처럼 다양한 대체 수입원을 구하기 어려워 원하던 최소한의 삶 조차 살아가기 어렵다. 손님접대 역시 특별한 것이 아닌 늘 일상에 살아온 그대로야 서로에게 부담이 없다. 그러나 우리 문화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접대하는 쪽이나 받는 쪽 모두에게 부담스럽게 한다.
 
농사도 사업이다. 철저하게 자기 책임하에 관리하며 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더욱 필요한 부분이기도 하다. 임대농에다 기계없이 농사를 지으니 일반 지출에 특수지출이 첨가되니 철저한 손익 계산을 하면서 해야한다.
농촌에서 여유롭게 한가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돈 많은 재벌이나 가능하다.
농촌은 노동에서부터 경제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도시와 다른 개념이 적용되고 있으며, 특히 자기 철학 없이 농촌에서 살기란 소득없는 노동만 하고 사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웃 농민들은 이미 삶의 철학이 튼튼한 뼈대처럼 서있다. 많이 배우지는 않았지만 삶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한마디 한마디에 깊은 뜻이 담겨있어 놀라울 때가 많다.
철저한 자기 책임과 관리는 어느 기업가보다 확실해 보이고, 방문객에 대한 것도 농사일 다음이다. 접대 또한 농촌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하며 외식은 단체 모임에서나 갖는다. 방문객의 경우 바쁜 농사철에는 일손을 도울 생각으로 오거니와 그러지 않으면 거의는 농사철을 피한다.
 
그럴만도한 그들의 이유를 우리는 작년에 겪게 됐다. 손님접대(함깨 시간을 보냄)로 농사시기를 놓치고 그후 더 많아진 일거리에 힘든 노동을 하고서야 절실히 깨달았다. 올해도 감자의 경우 파종 시기가 늦어 수확도 늦게 되고 결국 장마에 걸리게 되어 수확량에 막대한 손실이 왔다.
이렇듯 시기를 놓쳐 오는 결과는 고스란히 수입 손실로 이어지고 생활에 타격을 준다.
 
농사에는 그 때가 노동력과 수확에 큰 변수로 작용한다.
미루거나 빠뜨리면 전에 했던 것은 수포로 돌아가고 앞으로 얻어질 수확도 많은 지장을 받게 되기 때문에 농부들은 농사의 시기를 가장 중요하게 여겨 절대로 뒤로 미루지 않는다.
 
농촌에서는 피로가 쌓여 쉬고 싶어도 날씨 좋으면 언제라도 일을 해야하는, 농촌은 휴일이 따로 없다. 저녁 식사 후에도 때로는 일거리가 놓여진다.(콩고르기 등 수확물 상품성 높이기) 벌써 일 중독에 걸린 것 같다. 날씨가 좋은 날 쉬고 있으면 괜히 불안 초조하니 말이다.
요즘은 바로기획이 일요일에 쉰다. 하지만 집에서 쉴 수 없다. 쉬어도 불안하고 안하면 할 사람이 없으니 아프지 않는 한 휴일도 휴식은 없다. 거기다 휴일에 손님이 주로 오게 되니 더욱 난감, 힘들 때도 많다. 
 
이러한 현실을 바꿔보기 위해 마리산에게 인식의 변화는 물론 생활 패턴을 바꾸자고 제안을 했고, 인식의 차이로 여러번 실랑이를 벌이기도 했다.
우리의 생활은 분수에 맞지 않는 외형적인 겉치래에 치중하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자립되지 못하면 도리어 주변에 피해를 끼치게 되고,  빚져 허덕이는 삶은 허새일 뿐, 그에 따른 결과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차고 넘치는 것이지, 넘치고 차는 것은 아니니, 최소한 내 안 부터 채워야 하지 않겠나. 그 뒤는 자연스럽게 넘쳐나는 것이고 인심도 체면도 유지하게 되지 않을까. 이기적인 삶, 또는 욕심쟁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분수에 맞는 지극히 소박한 삶이라 생각한다.
 
부모님들께서 가끔 하시는 말씀 중에 "별 탈 없이 너희들이 잘 사는 것이 효도" 라고하신다. 이 말씀 또한 자립함이 먼저이고 그것이 타인에 대한 진정한 도움/배려임을 말하는게 아닐까.
 
귀농 3년차, 우리의 생활은 아직 안정된 삶이 아니다.
통상적으로 귀농 후 3년이 최대의 고비라고 한다. 그 고비의 3년차를 넘기고 있는 아주 불안정한 시기를 살고 있다.
공과금도 해결할 수 없는 연봉 350만원의 생활은 이미 유지 할 힘을 잃었다. 이 시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자기 반성과 냉철한 자기 점검은 살고 싶은 곳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이요 자세이다.
 
원하고 선택한 삶이 뜻한 대로 안정될 수 있도록 오랜 습관들을 새롭게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 우리를 아는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며 또 다른 선택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좀 더 진지해야 겠다.
 
실패같은 지난 2년의 시간을 토대로 3년차의 생활에 아주 작은 변화가 있어지길 기대해본다.
농민으로써 검소하고 소박한 삶을 살아야겠다.
여전히 여기가 좋다. 
 

 

'마리선녀 이야기 > 마리선녀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농업교육의 활성화 방안  (0) 2006.12.15
자기로의 삶을 위하여  (0) 2006.12.12
삶에서 깨어나기  (0) 2006.12.12
위기냐 기회냐  (0) 2006.12.11
전통생활문화의 지혜와 현대적 가치  (0) 2006.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