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무'와 friends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보자
낮에는 해동무 밤에는 달동무
우리들은 즐거운 노래동무
동무들아 오너라
서로들 손잡고 노래하며 춤추며 놀아보자
비오면 비동무 눈오면 눈동무
우리들은 즐거운 어깨동무"
어릴 때 부르던 동요입니다.
노래를 부르고 있노라면 함께 어울리던 친구 녀석들이 슬그머니 떠오르죠.
아, 그들은 어디서 뭐하며 살까...
그 녀석들도 내 생각을 하며 살까...
여기서의 '동무'는 상하(上下)도 없고, 비속(卑俗)도 없는 친근함의 표현이었죠.
그런데 이 정겨운 '동무'가 주변에서 사라졌습니다.
어릴 때에는 아주 친근하게 불리우던 말이었는데 조금씩 커가면서 그 말을 쓰지 않게 됐습니다.
뭔가 부담스런 단어처럼 비춰지는 건 비단 저만의 경우는 아닐거예요.
북녘땅에서 특별한 용례로 쓰인다는 것으로 인해 거부되는 말...
그렇게 '동무'는 없어졌습니다.
그러다가 최근에 안 것이 있습니다.
저도 참여하는 퀘이커 모임에서는 교우들을 friends 라고 합니다.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그렇게 부릅니다.
우리 말로는 보통 '친우'라고 하는데, 결국 이 말이 '동무'잖아요?
한국에서 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도 퀘이커 교우는 friends 인데, 17세기부터 이미 그들은 함께 하는 모든 사람들을 '동무'로 생각하고 부르면서 서열과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더군요.
얼마나 평등한 공동체입니까...
그래서 그런지 퀘이커 모임에 가면 누구나 동등하게 대하고, 나이와 학력에 따른 차별도 없고, 권위의식도 없으며, 한 사람의 견해도 소홀하게 하지 않기 위해 만장일치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의 링컨이 노예해방령을 내리기 100여년 전에 퀘이커들은 노예를 소유하지 않기로 결의하였으며, 소외된 자들 특히 감옥에 있는 자들의 처우와 인권을 개선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하였으며, 인간이 인간을 살상하는 전쟁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결단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언제든 퀘이커 모임에 가는 날이 기다려지는 것은 '동무'들이 갖고 있는 마음이 너무 따뜻해서일 겁니다.
그 동무들을 더 자주 만나야 할텐데 괴산과 서울이 멀어서 걱정입니다.
일이 있어 가지 못할 때에는 마음이라도 늘 '동무'들과 함께 하는 걸로 위안을 삼습니다.
지금 제가 발을 딛고 서있는 곳에서 진지하고 따뜻하게 살아가는 것이 '동무'의 마음가짐이라 생각되기에 거리의 존재와 상관없이 지금 여기에서 기쁘게 살아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