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있는 '기자'
아마도 (2005년) 10월 19일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다음날 강원도에 쌀팔러가는 날이었기에 기억이 나는 날입니다.
저희는 그 때 오후 5시경에 정미소에서 쌀을 싣고 집으로 오고 있었습니다.
T자형 도로에서 우회전을 해야 할 상황이기에 그렇게 하려고 보니까 왠 승용차가 우측 꼭지의 반 이상을 막은 채 서있었습니다.
이제 곧 가려니 하고 잠시 기다리고 있는데, 그 차는 전혀 움직일 생각을 하질 않았습니다.
차 밖으로 사람들이 나와서 자기들끼리 얘기도 나누고, 일행인듯한 다른 차가 와서 섰다가는 다시 떠나보내기도 하며 여유롭게 있더군요.
그때서야 이게 뭐 잘못되는구나 싶어서 유심히 보니 '청주방송'이라는 글귀가 차 옆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마침 차 옆에 서있던 정장을 멋지게 차려입은 젊은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차를 비켜줘야 되지 않겠냐고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젊은이가 저희 차로 오면서 말싸움이 생겼습니다.
자신들의 차가 도로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태인데도 거기에 대한 아무런 말도 없이 그 차를 돌아서 가라는 말이었습니다.
어이쿠~~
서른 전후의 그 방송국 사람은 매우 고자세로 우리를 대하기 시작했습니다.
어수룩한 농부차림의 우리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취재를 다녀오는 길이라고 하는 그는 누군가에게 하는 말인지 "차번호 적어!!라고 소리치며 자기 스스로 제 차 번호를 적고, 차 앞머리에 놓여있던 제 핸드폰 번호까지 씩씩대며 적어대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렇더라도 저희가 일일이 따지고 항변하니까 어느 순간에 갑자기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하곤 가시라고 하였습니다.
이 또한 어이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잘못했다는 건 아닌데 그냥 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그가 끄적거린 종이쪽지를 뺏어들고 그 차의 꽁무니를 한참 돌아서 돌아오긴 했지만 마음은 너무나 불편하였습니다.
누가 서른 즈음의 그 젊은이에게 그런 권세를 준 것일까요?
그런 시골 구석에서 '방송국 사람'보다 힘있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에서일까요?
그날 밤 sbs 8시 뉴스를 보다가 결국 우리는 문제의 그 힘있는 젊은이를 볼 수 있었습니다.
'황현구 기자.'
그랬습니다.
그는 cjb 청주방송의 '기자'였습니다.
평소 편향적인 보도태도를 보이던 방송사에 대해 실망하고 있던 차에 이제는 젊은 기자의 허세까지 덧붙이게 된 상황입니다.
무엇이/누가 그 젊은 기자에게 그런 큰 위세를 심어준 것인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허접한 방송의 '권위'때문이라면 그저 허허로운 웃음만 나올 뿐입니다.
이 땅에 방송사/방송인/기자의 제대로 된 자리매김이 언제나 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으며 오늘도 우리는 방송과 신문에 둘러싸여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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