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마리선녀 이야기/에코페미니즘

생명여성주의의 출현과 도전 /김정희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4.
<여성환경연대>04-08-31 16:46
 
* 2004년 8월 23일에 창원대에서 열린 경남여성환경포럼에서 김정희가 발제한 자료
 
 
생명여성주의1)의 출현과 도전

 

김 정 희

(이화여대 여성연구원 연구교수)


1. 생명여성주의의 출현

생명여성주의는 평화운동, 여성운동, 환경운동을 통합하는 최근의 매우 새로운 현상이다. 서구에서 ‘ecological feminism’이라는 용어는 1970년대 중반 프랑스의 페미니스트 작가 F.도본느(d’Eaubonne)에 의해 소개되었다. 그녀는 우리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두 가지는 “남성체계(the Male System)라고 부르는 곳에서 인구 과잉과 자원의 파괴이며 이를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여성이 남성 권력을 파괴하는 것”이라고 했다.2) 이때에 비로소 ‘지구는 다시 푸르게 될 것’이다.

 

서구의 생명여성주의는 단순한 이론적 입장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이 입장은 남녀를 포함하는 여러 운동단체들로 이루어진 새롭고 다양하고 탈집중적인 사회운동―녹색 소비자 운동, 반핵운동, 군비경쟁 및 자원, 인간, 환경에 대한 착취의 중지 요구 등―에서 지도원리가 되고 있다. 이처럼 여성문제와 환경문제의 시각이 만나게 된 것은 70년대 후반 소위 신사회주의 운동이라고 하는 지식인, 여성, 청소년, 환경 운동 등 다양한 사회운동이 활발한 모습을 보인 운동의 현장을 통해서다(이진아, 1996)

우리나라의 경우는 개발로 생계 터전이 파괴되거나 그 터전을 상실하고 때로는 온산병과 같은 공해병을 경험하게 된 개발 현장 곳곳의 지역주민들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환경운동이 발생했다. 여성환경운동가는 다음에 인용된 바와 같이 지역환경운동의 성패는 여성에게 달렸다고 말하는데, 이러한 지적은 자생적인 지역환경운동을 여성환경운동의 관점에서 연구해 볼 필요성을 지적해 준다.

 

“처음에 조직하고 대책위를 만들어내서 일정한 운동의 틀에 올려놓는 것은 상대적으로 기획력이나 조직력을 갖추고 있는 남자들이 합니다. 그러나 일정한 수위에 오르게 되면 여성들이 그 운동에 가담하지 않고서는 풀리지 않습니다. 이는 여성들이 실제 현장에 나서서 남성들보다 더 열심히 싸우기 때문입니다. 안면도나 굴업도 싸움에서 이길 수 있었던 것도 그 농성장을 지키고 있던 여성들의 끈질긴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지역운동의 승패는 여성의 참여 정도에 달렸다고 봅니다.”3)

이러한 자생적인 지역 주민 여성 중심의 환경운동은 90년대에 들어와서는 상계동, 목동, 산본, 군포시, 과천, 신림동 등지의 쓰레기 소각장 반대운동에서 보듯이 도시 지역의 주부들에게도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최근 부산의 ‘위천공단저지 범 시민항쟁’에 참여한 1만 5천여 명의 시민 중 절반은 주부가 차지하고 있다. 이 주부들은 “집에서 물 쓰는 사람들이 우리 주부들 아인교. 그러니 우예 화가 안나겠는교.”라고 말하고 있다.

 

한편 1980년대 중반부터는 여성운동단체 중심의 여성환경운동이 시작되었다. 1986년 ‘주부, 청년여성공해반대시민운동협의회’의 박길래 씨 후원과 진폐증 환자를 위한 사업을 필두로 1988년에는 공해추방운동연합의 여성위원회가, 1989년에는 한국여성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이 결성되었다.

 

또한 1989년에는 여성단체 중심으로 서울시 상수원을 보호하기 위한, 팔당골재채위 반대운동이 전개되었다. 1993년 이후는 정부의 쓰레기 정책이 소각으로 정해지고 소각장이 지역에 심각한 대기오염을 유발시킬 곳에 정해지면서 주부들과 여성단체가 연합한 형태의, 소각위주의 쓰레기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또한 1994년 우장산 개발을 저지시킨 이후, 지역주부들이 중심이 되어 자연 파괴를 막아내기 위한 궁산 살리기 운동, 능골산 살리기 운동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현장의 활발한 여성환경운동과는 달리 여성과 환경, 또는 생명여성주의에 관한 경험적, 이론적 연구는 아직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외국의 생명여성주의에 대한 논문들이 번역, 소개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우리의 역사적, 문화적 현실에 기반하는 생명여성주의의 이론을 정립하는 일은 여성학의 주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2. 지배당하는 여성과 자연

생명여성주의는 가부장제의 여성지배와 인간에 의한 자연의 지배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현상에 대한 이해는 다른 현상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고 본다. 생태계 파괴와 여성문제를 연관시켜 이해하는 이러한 견지에서 생명여성주의는, 첫째로 전 지구적인 생태위기는 여성에게도 위기와 고통을 가중시키고 있다고 보고 이러한 위기와 고통에 주목한다. 둘째로 생태계 파괴와 가부장제의 여성지배 사이의 논리가 서로 동일한 기반을 갖는다는 데에 주목한다.


1) 생태위기와 연관된 여성의 고통


아직 연구의 수준이 빈약하기는 하지만, 유방암, 생명생산과 관련된 여성 건강, 신경학적 증상들, 알레르기 질병들은 환경과 연관된 생태학적 질병(EI)이라 할 수 있다. 여성의 경우, 이러한 생태학적 질병 중 특히 생명생산의 위기가 심각한 양상으로 나타난다.

 

예를 들어, 불임, 기형아 출산의 확률이나 모유 내에 PCBs, PBBs, dioxin의 함량이 높아지고 있고, 유산, 조기 폐경 등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특히 노동자 여성들에게 이런 현상 높이 보고되고 있다. 산모가 임신 기간 중에 전염성 질병에 더 민감해지거나 빈혈, 부종 등을 나타내는 비율도 증가하고 있다.

 

불임률이 높아지면서 시험관 아기 시술이 급증하고 있다. 시험관 시술은 여성의 몸을 도구화하고 점점 난자나 자궁, 태아 등에 대한 상품화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시험관 시술은 부계혈통 위주의 관습과 결합되어, (고아 수출 1위국을 자랑하면서도) 많은 불임부부들은 불확실한 성공률과 고액의 금전적 부담, 피시술자인 여성 건강의 악화 등을 감수하면서도 입양보다는 시험관 시술에 압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시험관 시술은 현대 의학이 불임 여성에게 준 은혜로 간주된다.

 

생명생산의 위기는 미시적 통제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의 파괴와 오염이라는 전 지구적 상황에서 사회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아이의 출산이 전문의에게 사전 검사를 얼마나 철저하게 받느냐 하는 개인적인 차원으로 축소되고 있다.

 

예를 들면 1991년 대구의 페놀 사건은 다수의 주부들로 하여금 자연 유산과(기형아 출산 공포에서 비롯한) 낙태를 하게 했고, 확실히 검증되지는 못했지만 페놀이 섞인 수돗물을 먹은 임산부가 반신불수가 되고 기형아를 출산했다. 또한 영관, 덕적, 고성, 월성, 울진 지역 핵발전소 근무 노동자의 부인들과 골프장에 근무하는 캐디들이 유산을 경험하거나 기형아를 출산한 사례가 나오고 있다(★이상영, 1995). 우리나라의 기형아 출산률은 1971년에 1.3%였는데, 1975년에는 2.4%, 1990년에는 3.9%로 점점 증가하고 있다(연세대 의대 산부인과 교실 발표)4)  


이외에 생태학적 질병으로 추정되는 백혈병, neurotoxic 질병, 성장 장애 등과 같은 어린아이들의 질병 또한 증가하고 있다. 놀이터나 교실도 페인트, 석면, 내, 외부의 공기 등에 의해 오염되어 있다. 외국에서는 오염된 지역의 어머니들이 핵심 환경운동가가 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는데(★Nelson, 1990:179-180), 우리의 상황도 이와 유사하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생태계 파괴와 개발은 지역 생태계에 의존하던 여성의 생존 기반을 파괴하거나 여성에게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해양이 오염되면 개펄에서 채취하던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고, 양식장이 망가지거나 어획고가 눈에 띄게 줄어든다. 한 지역에 골프장이 개발되면 개발시의 폭파음 등으로 가축이 스트레스를 받아 유산하거나 달걀이 부화되지 않는다. 또 골프장의 농약은 주변 토양 미생물을 몰살시켜 토양 오염을 가져오고, 수해 및 용수 부족, 수질 오염, 산소 공급원인 산의 파괴 등을 가져온다.

 

“모든 사회적 모순이 그러하듯, 인류가 환경관리에 실패함으로써 결과하는 피해는 약자, 즉 여성, 저소득층, 원주민, 소수민족, 기타 소외계층에 더욱 큰 부담이 된다.” 5)


이러한 파괴적 개발에 대항하는 자생적인 여성운동은 전 지구적으로 개발 현장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이러한 운동의 대표적인 것으로 여성 한 명, 한 명이 나무를 감싸안아 가며 개발을 저지해 자신들의 생계 터전인 원시림을 지킬 수 있었던 인도의 칩코(Chipko) 운동과 케냐의 Wangari Maathai가 주도한 채집하면서 나무를 심고 가꾸는 ‘그린 벨트’ 운동을 들 수 있다(★Nelson, 1990: 184-185).

 

개발은 지역 토착민 여성의 생계 터전인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부담을 가중시킬 뿐 아니라, 여성에게 왜곡된 삶을 부과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우, 공업화 위주의 경제개발은 급격한 도시화와 함께 진행되어 많은 이농 인구를 낳았고, 이러한 이농민 중에는 많은 여성들이 포함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 동안 도합 120~150만 명으로 추정되는 준매매춘과 매매춘 여성인구가 형성되었다.

 

같은 시기 동안 생산직에 종사하는 여성의 수가 백만을 넘지 않는 상황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산업화는 여성을 산업 역군보다 상품화된 ‘성산업’으로 끌어들였다고 볼 수 있다. 더군다나 매매춘 관련 종사 인구가 400만 명이나 된다는 보고는 여성을 성상품화하는 ‘성산업’이 한국 최대의 소비 산업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게 할 정도다.


2) 여성과 자연을 지배하는 논리: 이원론


이원론은 사물과 현상을 구별하는 이분법(dichotomy)의 특수한 한 방식이다(★Plumwood, 1993:59). 즉 위계논리에 의해 차이를 구성하는 방식으로, 타자와 공유되는 특성들을 배제함으로써 각각의 특성을 극단화한다. 이때, 지배적 측면이 기본적인 것으로, 종속적 측면은 지배권력과의 관계에 의해 정의되고, 평가된다.

 

대부분의 서구 근대 철학자들은 ‘자연지배적’이며 ‘성차별적’인 위계적 이원론에 근거하여 자신의 이론을 전개하고 있다. 바울신학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 신학도 위계적 이원론이라는 점에서 기존의 철학과 다르지 않다. 기독교 신학에서 신의 의지에 따라 형성된 남성 가장과 비교할 때, 여성은 존재론적, 도덕적,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점이 강조된다. 이러한 서구 이원론들은 구체적 논변의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남성중심적’ 가정을 공유하고 있다.


   (1) 진정한 인간성과 문화의 영역은 남성적 이성 영역이며 육체/감성에 기초하는 여성은 자연의 영역에 속한다.

   (2) 여성, 자연과 이성 또는 인간적(〓남성적)인 것은 상호 대립된다.

   (3) 이성적, 인간적(〓남성적) 문화의 영역은 육체/감정에 기초하는 여성 및 자연 영역보다 우월하다.


이 같은 이원론은 문화/자연, 정신/육체, 이성/감정, 자유/필연, 보편/특수, 인간/자연(비-인간), 문명/원시, 생산/재생산, 공/사, 주체/객체, 자아/타자 등과 같은 다양한 이원론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이원론은 성, 계급, 인종적 억압과 동일시된다.

 

동양에서도 이 같은 남성중심의 위계적 이원론을 유교의 음양관에서 발견할 수 있다. 음이 양이 되고 양이 음이 되며, 음 속에 양이 있고 양 속에 음이 있다는 노장 사상의 평등주의적이고 전일적인 음양론과 달리, 유교의 음양론은 음, 양을 강장, 유약의 대립적이고 배타적인 속성으로 규정하며 양을 존중하는 이(理) 우위론적 관점에서 음양의 원리와 부부의 원리가 우주자연의 원리와 합일한다는 천도관(天道觀)을 역설한다.

 

이러한 천도관은 현실에서는 여성에게 자연법칙을 넘어선 순종을 강요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즉 원래 주역에서의 음양은 일음일양하는 순환논리와 음양조화론으로 외연되는 것이었으나, 理의 주재성을 절대화한 성리학 체계에 이르러서는 존양음비적 경향이 강해져서…남성의 위치와 권리를 절대화했다.” 6)


한국의 근대사 과정에서 이러한 유교는 사상사적으로 한 번도 철저하게 비판된 적이 없다. 오히려 최근 들어 아시아적, 한국적 정체감을 ‘신유학’이라는 이름으로 찾으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유교사상은 해방 이후 서구식 합리주의라는 명분하에 무비판적으로 수용된 서구의 위계적 이원론과 함께, 성차별의 이념적 기반으로 작용하고 있다.



3. 생명가치가 중심되는 사회를 향하여: 만물의 상호의존성과 생명성에 대한 자각


생명여성주의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남성중심적인 위계적 이원론의 세계관을 비판하면서 생명가치가 중심에 놓이는 전일적이고 유기체적인 세계관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생명여성주의는 인간과 자연, 우주에 대해 기존의 기계론적 세계관과는 다른 입장을 제시한다.

 

우선 생명여성주의는 만물의 상호의존성에 대한 자각을 요구한다. 생명여성주의는 살아 있는 모든 존재, 생명체는 살아 있는 몸체인 지구의 각 부분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러한 상호의존성에 대한 인식은 우리가 다른 인간, 자연 주기와 그 과정, 그리고 동식물과 공감하고 동일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형태의 존재는 형성되고 소멸되는 물질/에너지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나의 춤, 역동성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하나됨을 자각함으로써 비강제적이고 비억압적인 상호존중의 윤리가 형성될 수 있다.

 

현대과학이 생명 없는 무기물로 치부해 버린 자연, 더 나아가 우주까지의 모든 삼라만상의 상호연결성에 대한 이러한 자각은 동양에서는 낯선 것이 아니다. 불교의 색즉시공(色卽是空)은 살아 있는 개별 개체들의 절대적 실체성은 없고(이러한 의미에서의 공) 살아 있는 것들의 상호의존적인 생성의 세계만이 있음을 말한다.

 

『화엄경』의 “불자여, 비유컨대 삼천대천세계가 한 인연이나 한 사실로써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한량 없는 인연과 한량 없는 사실로써 이루어지나니…”라는 구절은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존재들의 궁극적 상호의존성을 잘 표현해 주고 있다. 만물의 상호연결성에 대한 자각은 단순히 불교와 노장 같은 동양의 생명철학의 철학 원리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조상과 어머니들의 삶의 일상적 지혜이기도 했다. 농부들은 콩을 심으면 한 구멍에 세 개를 심었다. 하나는 썩어 땅으로 갈 것, 하나는 새가 와서 쪼아 먹을 것, 나머지 하나는 자라서 인간의 몫이 될 것이었다. 흙마당에서 세수를 해야 했던 우리의 전통 가옥 시절, 어머니들은 겨울에 세수한 더운 물을 마당에 함부로 버리지 못하게 했다. 토양 1g에 수 억 마리의 미생물이 살아 숨쉬고 있음을 어머니들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만물이 상호의존적으로 생성하고 있는 살아 있는 존재라는 자각은 광대한 생명력과의 통일감의 자각이기도 하다. 이 광대한 생명력은 기독교의 신처럼 천상에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물 하나 하나에 내재한다.

 

이와 같이 우주적이고 신성한 생명력이 만물 하나 하나에 내재해 있다는 자각을 생명여성주의의 두 번째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불교에서 ‘마음을 깨치라’고 할 때 그 마음은 바로 ‘생명’ ‘살아 있음’을 깨치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마음의 전일성은 곧 생명의 전일성이다. 이처럼 우주적 존재 원리로서의 도(道)가 만물에 내재해 있다는 것은 노장 사상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같이 만물의 상호의존적 통일성, 우주적 힘, 원리의 내재성에 대한 자각을 서구 생명여성주의자들은 영성(spirituality)이라 칭하며, 동양에서는 ‘마음을 깨친다’ ‘도를 터득한다’라고 하지만, 그 함축하는 바는 ‘만물의 살아 있음에 대한 체화된 자각과 공경’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생명가치에 대한 자각은 인간중심적인 평등주의가 아니라 만물 평등주의로 귀결된다. 만물의 상호의존적, 신성한 마음, 도, 우주적 생명력(한 생명)에 대한 자각은 인간 내부의 위계, 인간과 동식물, 환경에 대한 기존의 서열화, 권력개념, 수동성에 도전함으로써 만물을 평등하게 볼 수 있게 한다.

이때, 인간의 정신성이 다른 존재들에 비해 뛰어나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과 이를 존재간의 위계성과 연관짓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생명여성주의의 이러한 만물 평등주의, 우주적 평등론은 오늘날 철저히 파괴되어 신음하고 있는 생태계와 인간의 생명을 평등하고 온전한 생명으로 되돌릴 수 있는 대안적 사상으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전통적 생명철학은 유교가 지배적 통치철학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상황 하에서 제대로 발휘될 수 없었다. 유교의 존양음비(尊陽陰卑)적 세계관이 현실 원리로 작용하는 풍토 속에서 어머니들은 자신들이 삶의 원리로 체득하고 있던 생명원리를 자신의 삶에 적용할 수는 없었다.

최근 자생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여성들의 환경운동은 이와 같은 옛 어머니들의 생명원리와 만나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운동을 통해 여성 자신의 삶의 생명성을 온전히 가꾸면서, 그 힘을 사회적으로 확대해 간다면, 여성환경운동은 여성과 자연, 그리고 남성까지도 살리는 거대한 생명운동의 물결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볼 문제


1. 여성운동에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무엇인지 함께 생각해 보자.


2. 환경문제와 여성문제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구체적으로 주변의 예를 찾아 분석해 보자.

 

미주

 

주1) 서구여성주의에서는 ‘ecological feminism’으로 불린다. 이를 직역하면 ‘생태여성주의’가 될 것이다. 이 여성주의가 정치적으로 주는 궁극적 함의는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살 수 있는, 생명가치가 온전하게 보전되고 발현되는 생명중심적 사회의 지향이다. ‘ecological feminism’이 지니는 이러한 궁극적인 함의를 제대로 전달하는 데에는 ‘생태여성주의’보다는 ‘생명여성주의’라는 말이 더 적합하다.


주2) 로지 브라이도티 외, 1995,「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한국여성 NGO위원회 여성과환경분과 옮김, p.263.

 

주3) 로지 브라이도티 외, 앞의 책, 94쪽.

 

주4) 서혜란, 1993, “환경문제와 여성운동”, 환경운동연합,『시민을 위한 환경교실』, 푸른산, p.315.

 

주5) 로지 브라이도티 외, 앞의 책, p.132 참조.

주6) 정세화, 1994,『한국여성교육이념연구』, 성지출판사, p.88 참조.


참고문헌

강선미, 이기호, 1997,「한국사회운동의 과제와 전망」, 서울: 개마서원.

서혜란, 1993, “환경문제와 여성운동,”『시민을 위한 환경교실』, 환경운동연합, 푸른산.

여성과 환경, 지속가능한 개발에 관한 NGO 네트워크, 1995, 『여성과 환경, 그리고 지속가능한 개발』.

정세화, 1994,『한국여성교육이념연구』, 성지출판사.

김정희, 1998, “생명여성주의의 존재론적 탐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학위청구논문(미간행).

전우경, 1997, “생태여성주의에 대한 일연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학위청구논문(미간행).

이경아, 2000, “모성의 사회적 확장에 관한 탐색적 연구”, 이화여대 여성학과 석사학위청구논문(미간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