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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환경연대> 2004-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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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위기에 맞서는 여성의 지혜 1)

주1)『꿈꾸는 지렁이들-젊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세상보기』 서평, <녹색평론>72호. 2003. 9-10월호.


김 정희(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 연구교수)


하나, 들어가는 말

이 책은 책의 부제가 말해주고 있듯이  ‘젊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의 세상보기’이다. 석사 졸업을 했거나 석사 논문을 준비중이며 혹은 박사과정을 수료한 이들에게 느껴지는 호기(浩氣)는 한국 에코페미니즘의 내실 있는 성장을 기대해도 괜찮겠다는 징후를 느끼게 한다. 사실 꿈지모가 자신들의 정체성을 아직 세상에 들어내기 몇 년 전에 누군가 꿈지모 회원에게 전화를 받은 적이 있었다. 환경 공부를 하는 모임이 있는데, 선배가 함께 해 줄 수 있냐는 문의 전화였는데, 공동육아연구원의 실무자로 하루하루를 정신없이 보내던 나는, 순간적으로 이 후배들이 얼마나 소모임을 지속해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적당히 함께 하기 어려운 사정을 둘러대며, 거절했던 기억이 난다. 난 그들에 대한 믿음이 부족했던 것이다. 자신들의 정체성을 세상에 당당하게 드러낼 만큼, 성숙한 이들을 보며,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생명여성주의를 말하면서, 언행이 괴리된 나 자신을 보게 되어 참으로 부끄러운 마음이 밀려온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나와는 달리, 이 튼실한 딸들을 혼자 잉태하고 품고 이 세상에 내놓은 한 어머니 문순홍 선생님의 넓고 깊은 사랑에 깊이 고개 숙여 감사하게 된다.

둘, 에코페미니즘의 존재 근거들

우선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여성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에콜로지는 그냥 에콜로지가 아니라 여성이 하는 에콜로지, 즉 에코페미니즘이 될 수밖에 없음을 한국적 맥락 속에서 잘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이 보여주는 에코페미니즘의 존재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에코페미니즘은 생태적 사건을 보되 여성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어 보며, 이것은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경우, 여성에게 매우 중요한 환경 또는 생태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간과되고 설명되지 않으며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여성과 생태 위기와의 관계를 설명하고 드러내준다. 이들이 드러내 보여주는 생태 위기 속의 여성 경험은 하나 하나 살펴보면 비로소 그 고통의 심각성이 드러난다.  


다이옥신이 함유된 탐폰은 탐폰쇼크증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폴리에틸렌을 주성분으로 하는 생리대를 이용하는 여성들은 발열, 피부 짓무름, 가려움 등을 호소한다(나만 해도 몇 년 전부터 이 증상 때문에 매우 괴로웠는데, 궁여지책으로 집에 들어오자마자 생리대에 얇은 면 손수건을 덧씌워 이용하면서 겨우 이 증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예쁘기 위해 하는 화장품이 사실은 장기적으로는 예쁨에 반(反)하는 효과를 가져오는 독성 물질 투성이다. 거의 모든 화장품에 들어 있는 방부제는 피부 알레르기의 주 원인이다. 표본 조사에서 납, 비소, 수은 등의 중금속이 포함된 것이 발견되기도 했으나 성분이 표기되지 않은 화장품들이 대부분이다. 피부를 젊게 하는 내처럴 요법으로 알려진, 화학박피제로 사용되는 AHA는 고농도일 경우 오히려 피부손상과 광노화(光老化), 피부암을 일으킬 수 있다. 이 AHA는 최근 스킨, 클린징 제품, 바디 로션과 같은 일상적 화장품에까지 사용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니, 그 피해의 범위는 거의 전 여성을 대상으로 할 만큼 광범위하다 할 수 있다. 농업인구의 노령화와 여성화, ‘앉아서 하는 밭농사’를 여성이 맡는 농업의 성별분업 구도 속에서 여성 농민은 농약에 보다 더 노출되고 있다. 역시 성별분업 구도 하에서 식생활을 책임지는 주부 역시 농약 오염된 먹을거리를 일차적으로 다룸으로써 다른 식구들보다 농약에 더 노출되고 있다. 정자 수 감소 효과로로 국내에서 주목받은 환경호르몬은 여성에게는 유방암, 생식기 관련 암을 증가와 깊은 연관이 있고 어머니인 여성의 체네 환경호르몬은 태아와 젖을 통해 유아에게 전수된다. 또한 여성은 실제 산재피해율에 비해 산재를 인정받기가 어려운데 이 또한 성별노동분업 구조 및 이데올로기와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여성은 남성 노동자보다 압도적으로 미등록된 소규모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서비스업, 단순 노동직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산재 인정을 받기가 더욱 어렵다. 또한 여성은 가사 노동으로도 끊임없이 고된 일을 하기 때문에 산재로서의 질병 혹은 증상도 직무와 상관없이 나타나는 것으로 여겨진다. 불임 치료의 생식 기술을 중심으로 발전하고 있는 생명공학은 난자를 채취하는 과정이나 수정란을 자궁에 이식하는 등의 시술과정이 여성 몸에 미치는 영향은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발전해가고 있다. 그 결과 생명공학의 발전은 여성에게는 발전이 아닌 생산 기계 혹은 공장으로 또는 상품으로 몸이 전락되는 추락이 되고 있다. 그리고 난자 매매와 대리모 사업이 성업을 이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는 생명 윤리 전문기구는 아직 설립되고 있지 못하며 올바른 생명윤리법 또한 제정되고 있지 못하다. 한편 새만금 갯벌의 조개 채취 여성들에 주목하는 글은 생태계 파괴가 단순히 환경 파괴가 아니라 가족을 부양해온 독립적 삶의 주체로서의 원주민 여성들의 삶과 자립을 송두리째 뿌리뽑는 가부장적 파괴이기도 함을 보여준다.


‘귀농 여성의 고단한 얼굴’과 ‘여성이 본 에너지 위기와 대안’, ‘학교 환경 교육, 근본부터 뜯어고쳐라’는 다른 글들이 남성 생태주의에서 아예 다루지 못하는 여성 경험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과는 달리 같은 주제를 여성 생태주의자와 남성 생태주의자가 다룰 때 어떻게 다르게 다루어지는지를 보여준다.  남성 생태주의는 ‘귀농’과 ‘대안 에너지’, ‘환경교육’까지 말하지만, 에코페미니즘은 이렇게 제시되는 대안과 여성경험의 연결성을 천착하지 못하는 대안은 여성에게는 진짜 대안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즉 에코페미니즘은 대안 운동의 성공 조건으로서  성별분업의 해체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이것이 수반되지 않는 운동은 여성을 더 고단하게 할 뿐, 현실적이고 효과를 낳는 대안운동이 될 수 없음을 지적한다. ‘전쟁은 여성과 자연에게 무엇인가’와 ‘올림픽을 고발한다’의 두 글은 전쟁과 올림픽이라는 지구적 재앙과 축제(?), 그리고 학교의 환경 교육 모두가 모두 남성중심적 기획-패권주의와 상업주의, 성장지상주의와 등-의 연장선 상에 있음을 보여준다.

이상에서 요약해 본,  여성과 생태위기의 직접적인 관련성은 여성에게 매우 중요한 환경 또는 생태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남성 생태학자들의 생태 연구나 담론에서는 간과되고 설명되지 않으며 따라서 사회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바로 이 점이 에코페미니즘이 존재할 수 밖에 없는 최우선의 근거이다. 이 책의 2/3가 바로 이같이 간과되고 설명되고 있지 않은 생태위기 속의 여성 경험을 드러내 보여주는 데 할애되고 있는 것은 바로 여기서 연유된다.

한편, 에코페미니즘의 두 번째 존재 근거는 가부장제라는 큰 틀 속에서도 여성이 일구고 지속시켜온, 전통적 여성 삶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탈 가부장적인 여성중심적 지혜와 문화를 읽어내어 그것을 버려질 운명에서 다시 현대라는 시공간 속의 여성들의 문화로 소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놓는 것 또한 에코페미니즘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에코페미니즘은 우리 어머니, 할머니들의 여성 경험에 주목하는 같은 여성으로서의 생태 감수성이다. ‘조산술: 자연스럽고 생태적인 출산의 지혜’라는 글에서 나는 이러한 생산적인 에코페미니즘의 면모를 보았다. 이 글은 과거의 어머니들은 전통적 가부장제의 덫에 놓여 옴짝달싹 못했던 총체적으로 무기력한 여성으로 조망하는 경향이 있는 우리 현대 여성들의 견해가 얼마나 그릇된 오만일 수 있는가를 깨닫게 해준다. 의료 도구와 약물, 의사 등과 같이 여성의 몸을 이해하지 못하는 현대 산부인과 체제의 노예가 되어 자기 아기를 꺼냄을 당하는 현대의 이른바 과학적 출산과 달리 산모와 태아에 대한 전일적 지지 속에서 산모 와 아기 자신이 주인이 되는 전통 출산의 대조는 얼마나 극명한 것인가! 사지를 묶여 짐승보다도 못한 출산을 경험하는 대부분의 공부 많이 한 우리 현대 여성들은 얼마나 헛똑똑이인지! 반면에 스스로 주인이 되는 출산의 전통을 만들어 유지해 온 어머니들의 당당한 주인성과 그 지혜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여성 조산사와 조산원은 그 전통의 연장선 상에 있다.


‘갯벌 위 살림의 손, 새만금 여성들’ 역시 자연 속에서 삶의 이치를 읽어내는 지혜로운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녀들이 읽어내는 삶의 이치는 모든 것은 생명이라는 것, 차별과 편견이 없는 평등의 세상이다.

“나는 이 생합 나오는 것이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어요. 생명이잖아요. 생명의 소중함을 다른 사람들은 아마 잘 못 느끼는 것 같은데, 나는 남편을 일찍 잃어서 그런지 갯벌에서 나는 모든 생명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요. 그게 나오면 ‘아유, 너밖에는 나를 도와줄 사람이 없구나’ 내가 그래요”(157쪽)


“ 난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아는 것도 없어요. 하지만 저 갯벌은 어떠한 차별과  편견도 없이 나를 대합니다.(…)또 누구에게나 언제나 똑같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지요(198쪽).

이런 어머니들의 지혜이자 철학은 시바(Shieva)가 『살아남기』에서 생태적 삶 속에서 비롯되는 여성적 원리로 사회생태여성주의자들이 여성의 영성-우리 문화권에서는 마음으로 불린다-으로 명명하는 것이기도 한다. 그러나 화학농법의 보편화, 농업의 여성화와 같은 새로운 성별분업 등의 현상은 농어촌의 생태적 삶 역시 심각하게 파괴되고 있고 따라서 생태적 삶에서 비롯되는 여성 원리에서만 존재성 회복을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임을 말해준다. 이러한 현대적 맥락 속에서 이 책에 실린 ‘자연의 이야기를 듣기: 생명여성주의자가 되어 간다는 것’, ‘생태여성주의 영성: 몸의 영성, 치유의 영성’의 두 편의 글은 영성을 소생시키 것과 관련된 또 다른 실제 경험과 사유를 보여준다.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이야기를 되먹여 주는  소모임, 명상, 몸을 직접 살리고 억압적 조건들을 바꾸어 가는 과정 속에서 영성은 소생된다.  이같이 지혜와 철학이 지식인의 독점적 소유물이 아니라 생활 속의 깨달음임을 포착하는 것 역시 생태적 여성 경험에 주목하는 에코페미니즘에 의해 가능하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생태 위기와 연관되는 여성 고통의 경험과 그 맥락은 이것들에 초점을 맞추는, 때로는 망원경 역할을 하고 때로는 현미경 역할을 하는 에코페미니즘이라는 이론과 그 실천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 다른 한편, 이 책의 ‘생태 비평 일각의 오만과 독단’이라는 글은 에코페미니즘의 남성중심적인 사회․경제 체제의 가부장성, 야만성에 대한 통찰과 분석이 족히 5천여년은 지속되어 온 가부장적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학문적, 실천적 성찰과 새로운 문명에 대한 전망으로 이해되지 못하고 소위 페미니스트라는 일군의 학문적 자질을 갖추지 못한 집단의 사회운동 강령 정도로 폄하되는 남성 생태 담론의 현실을 보여준다(그런데 이론없는 사회운동이 있던가!). 탈가부장제를 이론적, 실천적으로 지향하는 여성들에게 페미니즘 전반에 대한, 마음으로 이해함 없는 남성 지식인들의 이러한 몰이해와 폄하적 비판은 무시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일일이 대응하자면 피곤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매우 소모적인 작업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여성들로서는 참으로 피하고 싶은 이러한 논쟁을 후배들 ‘꿈지모’가 감당해왔구나 싶은 게 참으로 미안하고 안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단언컨대 가부장적 문명의 야만성에 대한 감수성이 결여된 생태학, 생태주의는 결코 온전한 생태학, 생태주의일 수 없다. 그것은 부족하거나 가짜다. 그리고 여성이 보기에 부족하거나 가짜인 남성 생태주의가 횡행하는 바로 이 현실은 바로 에코 페미니즘의 존립 근거이다.

셋,과제와 기대...

에코페미니즘의 의제들을 두루 짚고 있어 에코페미니즘 개론서로서도 어느 정도 손색없어 보이는 이 책을 읽으면서 독자들은 내가 그랬듯이, 자신의 경험을 성찰하고 감동받으며 책을 읽어내려가지 않을까 싶다. ‘모유 수유 운동의 겉과 속’을 읽을 때는 나의 수유 경험을 상기해 보는 시간을 가졌고 ‘생리대가 여성 건강을 망친다’를 읽을 때는 비로소 이 문제가 공식화되는구나 싶어 시원함과 더불어, 대안 생리대 생산과 보급을 목표로 하는 신세대 페미니스트들의 등장을 상상해보기도 하였다. 마찬가지로 ‘조산술:자연스럽고 생태적인 출산의 지혜’를 읽을 때는 지금의 소외적인 산부인과 출산이나 고도로 상품화되었으나 그 질은 바닥인 산후조리원이 아닌 조산원과 산후조리원이 결합된 어떤 새로운 형태의 출산 문화를 상상해보았다. 이렇듯 이 책이 독자로 하여금 성찰과 감동, 상상의 여러 작용을 하게 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제기를 하는 이 책의 태도에서 비롯되며 이것은 바로 생태주의의 특징이기도 할 것이다.


이러한 많은 장점만큼 이 책을 펴낸 ‘꿈지모’에 더욱 기대하는 마음을 품게 되는데, 이것은 이들이 에코페미니스트로서의 출사표를 던진 호기 충천한 젊은 에코페미니스트들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들은 활동가와 연구자 그룹으로 구분되어 갈 터인데, 그 어느 경우에도 그들이 쓴 자기 글들에서 전제하고 넘어간 사항들을 앞으로의 연구와 활동에서 되짚어보는 자세를 잃지 않기를 바란다. 그것은 이 책의 글들이 문제제기 차원에서 쓰여진 글들이므로 더러 이들이 당연시하고 넘어간 전제들은 사실 심도 깊은 연구를 필요로 하는 주제들이기도 하다. 예를 들면, 생협 유통은 자국 생산, 자국 소비의 기본 정신에서는 에너지 절약적인 유통방식이긴 하지만,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 볼 때 갈수록 비닐 하우스 재배가 많아지고 있는 유기농 재배를 과연 일반적으로 에너지 절약적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가 제기된다.  또한 이 책의 전면에 내세워지고 있는 성별분업과 달리 숨어 있는 또 하나의 키워드는 ‘건강’으로 보인다. 개인적으로도 개인과 사회의 삶의 질을 규정하는 생태주의적인 척도는 ‘건강’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이때 ‘건강’ 개념은 정리되어야 할 숙제로 남는다.


둘째, 에코페미니스트로서의 근본적인 문제제기와 고민은 실천적이건, 이론적이건 구체적인 현장에 기반해야 할 것이다. 이론가 혹은 실천가로서 나는 어떤 현장을 갖는가는 꿈지모가 삶과 유리된 경향이 있는 현대의 전문적 학문 체제와 구분되는 현장성을 특징으로 가져야 한다고 할 때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이다.


세째로 ‘꿈지모’ 성원들이 서로 차이 나는 길을 간다고 하더라도 연대의 끈을 놓치 않기를 바란다. 생태주의에서 차이나는 집단간의 연대는 생태주의 거시 정치학이기도 한데, 아직까지 이러한 연대가 잘 되고 있다는 증후는 잘 보이지 않는다. 예를 들면 대안교육 운동과 같은 대표적인 생태운동의 경우, 현장 하나, 하나가 힘겹게 고립된 실천을 해가고 있을 뿐, 이들이 공유하는 짐을 덜어주고 대처해갈 수 있는 연대의 틀은 아직 만들지 못하고 있어 대안 교육운동의 파편성을 느끼게 된다. 적어도 꿈지모는 이 면에서 모범을 보여주며 발전해가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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