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4월 21일 마리선녀 씀 -
욕망과 순수의 이중주
- 영화 '여왕 마고'를 보고 -
1. 들어가며
인류 평화는 모든 사람들의 소망일 것이다. 역사상의 수많은 전쟁도 표면적으로는 평화를 수호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왔다. 그러나 평화는 본래의 그 순수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에로 나아가는 과정에 있어 수단과 방법이 본래의 의미를 망각하게 하고 있으며, 국가나 개인의 권력욕을 유지하는 도구개념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크고 작은 내전과 전쟁들이 그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폭력적 광기(狂氣)는 종교적 이념을 앞세우거나 힘의 우위로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고도 정당성과 합리성을 주장하는 특성을 갖는다. ‘여왕 마고’(La Reine Margot) 역시 16세기 프랑스 종교전쟁을 배경으로 한 실제 사건을 다룬 역사 영화로, 인간의 끝없는 권력욕과 종교적 평화로 가장한 권력의 모순을 표현해내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힘 있는 자들의 ‘평화’에 대한 이중적인 잣대를 어떻게 들여다봐야 할지 고민해야 하며, 이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함에 있어서도 바른 안목을 키워가야 할 책임이 있다. 어쩌면 힘의 논리에 숨죽인 방관자 내지는 암묵적 공범자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 자신을 냉철하게 되돌아봐야 하고, 특히 ‘여왕 마고’를 통해서 종교와 권력의 상관관계를 ‘오늘’ 우리의 삶과 비교하는 것도 의미있다 할 것이다.
2. 욕망과 순수의 이중주
1) 권력적 평화
똘레랑스(관용)의 나라, 프랑스. 인간적이면서 다양성을 존중하는 오늘의 프랑스가 있기까지는 혼란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왕실의 권력다툼과 종교적 갈등으로 인해 무고한 백성들이 죽어가는 시련의 역사가 있었다. 그러한 사실(史實)들은 오늘날 영화의 소재로 활용되고 있으며, 또한 현실의 반면교사로 삼기에 충분한 교훈을 베풀기도 한다.
영화 ‘여왕 마고’는 1572년에 프랑스에서 발생한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Massacre de la Saint-Bartholomew) 사건을 배경으로 한다. 신교와 구교 사이의 종교전쟁으로 프랑스는 양분된다. 이러한 난국을 해소하기 위해 샤를르(Charles) 9세의 여동생 마고(Margot, 본래 이름은 마르그리트 드 발르와, 1553-1615)는 신교도인 나바르(Navarre)의 왕 앙리 드 부르봉(Henri de Bourbon, 1553-1610, 나중에 앙리4세가 된다)과 결혼한다(1572년). 그녀는 구교도이지만 종교갈등으로 혼돈상태에 있는 프랑스를 위해 정략결혼의 희생물이 된다.
종교간 화합으로 위장한 무서운 음모는 왕의 어머니인 까뜨린느 드 메디치의 권력욕의 발로였으며, 그것은 곧 무수한 인명을 살육하는 대학살을 싹틔우는 것이었다. 교황 클레멘스 7세의 질녀인 그녀는 마키아벨리즘의 공기 속에서 성장하여 종교심 뿐 아니라 도덕적 관념도 없고, 만사를 자신의 권력신장과 허영심을 충족하며 산다. 왕인 샤를르9세가 10살에 즉위했기에 까뜨린느에게 실권이 있었고, 자라면서 왕은 신교도인 콜리니(Coligny) 제독을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신임하고 있었으나 까뜨린느는 왕의 그런 태도가 못마땅하여 신교도의 상징인 콜리니 제독을 암살하고 둘째 아들 앙쥬를 왕으로 세우려 한다. 까뜨린느는 콜리니 제독의 영향력이 커질 것을 염려한 나머지 마고의 결혼식을 기회로 콜리니를 암살하려고 하였으나 실패하고, 왕이 이를 조사하자 암살 음모가 탄로 날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결혼식을 위해 파리에 모인 신교도들의 암살 계획을 꾸민다.
마고와 앙리의 결혼을 축하하러 신교도인 많은 위그노(Huguenot, 영어로는 Protestant)들이 모여들었다. 기나긴 종교 전쟁으로 인해 프랑스 전체가 피폐해 있었기에 그들은 내심 종교적 화합과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바라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들의 결혼은 새로운 기대이자 희망이며, 계곡같이 깊게 패인 갈등의 골들이 일순간 메워지는 것 같았을 것이다. 성대한 결혼식이 끝나고 구교도와 신교도들은 축제의 열기 속으로 휩싸이게 되지만, 까뜨린느의 무서운 음모는 6일 동안의 축제가 끝나고 동이 터 올 무렵에 드러나고 만다. 8월 24일 새벽 이른 시간에 신교도들에 대한 무차별 대학살은 시작되고, 다음날 왕이 학살 금지 명령을 내렸지만 까뜨린느는 하느님의 계시이자 종교간 화합을 위하는 일이라며 이를 강행하니 그해 10월까지 유혈 사태가 지속된다. 이로 인해 5,000여 명의 신교도가 목숨을 잃어 세느강은 피로 물들고, 파리는 거대한 공동묘지로 변한다. 이것이 바로 성 바르톨로메오의 학살이다.
잔혹한 평화, 잔혹한 종교, 모두는 속과 겉이 다른 두 얼굴을 가졌다. 신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종교는 무엇을 위해 있는가? 이스라엘 신과 팔레스타인 신은 다른가? 과거의 신과 오늘의 신은 다른가? 이라크 전쟁은 누구를 위해 행해지고 있는가? 단지 종교적 이유로 왜 차별받아야 하는가? 많은 사람들은 세기를 넘나들며 세계 곳곳에서 저항하며 울부짖는다. 오늘의 현실이 스크린처럼 뇌리에서 교차한다. 그러나 진실은 죽지 않는다. 우주의 신은 모두의 신이며 지금도 역사가 살아 숨쉬며 진실을 말하고 있다. 다만 욕심이 눈, 귀를 멀게 했을 뿐이다.
정략적 결혼을 한 마고와 앙리이지만 모후인 까뜨린느의 생각처럼 무조건 따라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위그노의 살육이 끝나자 결혼 전에 이미 예정되었던 앙리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마고는 남편 앙리에게 후일을 위해 살아남기를 바라며 구교도로 개종하기를 설득한다. 결국 앙리는 구교로 위장 개종을 하기에 이르고, 일련의 마고의 행동으로 그녀의 신교도에 대한 진실한 마음을 알게 된다.
2) 권력적 성(性)문화
사랑이 없는 형식적 결혼생활을 하는 마고와 앙리 두 사람은 동침하지 않기로 약속한다. 반면에 마고는 평상시와 같이 애인 기즈(Guise)와 동침하려 한다. 구교도의 실력가 기즈는 그날 밤 마고의 첫 순결의 대상이 자신이 아니라는 고백을 듣고 놀란다. 오빠들이냐고 묻지만 마고는 대답하지 않는 것으로 인정을 말한다. 마고는 기즈에게 사랑을 애원한다. 그러나 순결에 대한 고백과 힘없는 신교도의 왕 앙리의 아내가 된 마고는 이미 기즈에게는 아무런 이용가치가 없게 되었으므로 그녀의 요구는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마고는 정략적 결혼의 희생물인 자신의 슬픈 마음을 애인 기즈에게 위로받고 싶었을 것이다. 기즈의 거절은 신교도의 아내로서 처참한 앞날을 예고하는 것이며, 더 이상 왕실의 공주가 아닌 이빨 빠진 사자처럼 허수아비 왕의 아내인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기즈는 처음부터 마고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의 출세와 권력을 얻기 위해 왕실의 공주가 필요했던 것으로, 권력을 위해 성을 이용한 것으로 보인다.
기즈의 속셈을 알게 된 마고는 더 이상 왕실의 공주가 아닌 한 인간으로 돌아간다. 하녀에게 오늘 밤 사랑할 사람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그녀는 자신의 결혼식을 보러 지방에서 올라온 위그노들의 집합소인 어느 어두침침한 골목으로 하녀와 함께 가면을 쓰고 헤맨다. 사랑을 구걸하려는 마고는 마침내 신교도의 지도자인 콜리니 제독의 친구 아들인 라 몰르와 극적으로 만나 거리 섹스를 한다. 마고의 이러한 행동을 즉흥적이며 충동적인 불순한 여성으로 치부할 수 있겠으나, 마고의 입장이 되어 그녀를 이해해본다. 알 수 없는 사내와의 거리 섹스, 이 순간이야말로 다른 많은 사람과의 관계와 달리 그 어떠한 권력의 이해관계도 개입되지 않은 관계로서 진정한 자유, 마고 자신만의 시간이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왕실의 마고는 이미 권력의 희생물로 진정한 자신일 수 없었던 것이다.
3) 순수한 종교인의 사랑
마침내 마고는 진실한 사랑을 만난다. 학살의 공포가 휘몰아치는 동안 신교도인 라 몰르는 구교도로부터 총상을 맞고 쫒기던 중 마고의 극적인 도움으로 위기를 모면한다. 총상을 입은 라 몰르를 치료하면서 마고는 진정한 사랑에 빠진다. 표면상으로는 종교적 적대관계이지만 종교를 떠나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깨닫고 그 어떤 사상과 이념을 초월한 순수한 마음을 교류하고 있었다.
왕인 샤를르9세의 도움으로 나바르로 돌아온 앙리는 위그노로부터 다시 왕으로 추대된다. 마고의 순수한 마음과 진실을 안 남편 앙리는 위그노의 구교도에 대한 적대감으로 마고의 구출을 반대하였지만 위험에서 구해야 한다며 왕실로 가려한다. 그러나 다시 돌아온 왕을 다시 보내려 하지 않는 위그노들의 요구에 앙리는 라 몰르에게 마고를 구해 올 것을 부탁한다. 라 몰르는 그녀를 구하기 위해 왕실로 간다. 왕실은 이미 함정을 파놓고 기다리고 있었으니 라 몰르는 체포되고, 이를 알게 된 마고는 오빠인 샤를르9세에게 애원한다. 하지만 왕 또한 어머니인 까뜨린느의 실수로 앙리 대신 죽어가고 있었으니, 결국 샤를르 9세는 마고의 애원을 들어주지 못한 채 죽게 되고, 라 몰르도 기즈에 의해 처참하게 처형된다.
라 몰르와 앙리와 마고는 종교적으로 보면 적대관계이다. 하지만 이들은 목숨보다 더 소중하게 여겨왔던 종교적 이념과 권력을 포함한 모든 것, 즉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많은 이해관계를 버리므로 진정한 자신으로 돌아가게 된다. 세상에서 갓 태어난 알몸처럼, 섹스를 구걸한 거리의 여자 마고처럼, 위신과 체면, 허울을 벗어던진 진정한 자연인이 된 것이다.
권력의 달콤함과 화려한 왕실 생활을 뒤로한 채 마고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를 가슴 깊이 묻고 남편인 앙리를 찾아 떠난다. 휘몰아치는 잔혹한 시간에 ‘이젠 나바르로 돌아가 영원히 쉬고 싶다’는 마고의 진심이 영화가 끝난 지금도 귓전에서 맴돈다.
3. 나가며
여기에서 우리는 인간과 종교의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깊이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종교란 이미 창세 전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공기같은 존재여서 애초부터 인간과 종교는 서로가 없어서는 안될 공생(共生) 관계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인간은 종교의 순수성을 악용하여 개인의 권력욕을 심화시키고, 나아가 그런 종교의 순수성을 평화로 위장하여 인류의 본질적 존엄성을 파괴하고 있다. 결국 타락한 종교는 그 자신의 순수한 의미를 상실한 채 다양성과 관용이 아닌 독선과 편협한 도그마로 올가미를 채워 고도의 정신적 권력적 지배자로 인간위에 군림하는 성향이 있다. 순수와 관용을 잃어버린 종교는 이미 인간의 마음에서 벗어나 있는 것이다.
따라서 타락한 종교와 권력은 서로를 위해 유착관계로 공생하고 있으며, 평화를 가장한 파괴자의 또 다른 얼굴로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폭력을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모순이 정당화되고 이해되는, 또는 힘 있는 자의 횡포가 권력으로 인정되는 세상에서는 인간을 위한 종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개인적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종교와 신을 앞세워 신교도를 학살하는 까뜨린느와 경제적 이익의 착취를 위해 이라크를 침공하는 미국, ‘여왕 마고’를 되새기면서 이 둘이 자꾸만 교차되어 떠오르는 것은 나만의 비약된 논리일까?
'마리선녀 이야기 > 마리선녀 사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도로 가는 길 (0) | 2006.12.15 |
---|---|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기적'을 읽고 (0) | 2006.12.15 |
마틴 기어의 귀향 (0) | 2006.12.15 |
농업교육의 활성화 방안 (0) | 2006.12.15 |
자기로의 삶을 위하여 (0) | 2006.12.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