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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5년 4월 21일 마리선녀 씀 -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기적'을 읽고]

나의 삶에서 드러나는 ‘생태적 경제기적’



처음말


“생태는 단순히 자연보호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 삶을 보장하는 경제가 미래에도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생태적 경제기적'을 추천하는 헤르만 셰어(Hermann Scheer)의 언사(言辭)다. 나아가 ‘생태’와 ‘경제’는 항상 하나의 동일한 정황에서 비롯된다고 밝힌다. 이러한 그의 평가와 걸맞게 프란츠 알트(Franz Alt)는 실업과 생태의 위기로 드러나는 체념의 시대에 용기를 불어넣으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함에 있어서 야기되는 걸림돌을 책장 곳곳에서 적시하고 있다. 즉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정과 사회적 담론, 그리고 생태환경에 대한 인식은 일반화 되어 있으나 여전히 생태환경 문제가 세계적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이에 따라 ‘생태와 성장 즉 생태와 경제의 관계’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의 다양한 시각과 주장, 그리고 정치적 이해관계가 서로 엇갈리어 자기 이익을 위해 지구적 재앙을 가벼이 여기고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에 대한 그의 지혜가 삶에 있어서의 새로운 인식전환의 요구이자 다가올 지구적 재앙으로부터의 구원이라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이제 인류가 맞닥뜨릴 두 가지 과제인 ‘생태’와 ‘경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합리적인 대안을 프란츠 알트의 다섯 가지 제시를 통해 살펴본다.


1. 생태적 노동의 의미


몇 해 전, 도시에서 농촌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빠르게 변화하는 도시 속에서 여유없이 쫓기듯 앞만 보고 경쟁적으로 달려야 하는 긴박함과 환경친화적이지 못한 사회구조에서 벗어나 느리고 여유롭게 살고자 귀농을 한 것이다. 자기 성찰의 기회조차 없는 세상에서 단 한번도 시간 사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해보지 못한 채 그저 타율적인 인간으로 살아가야 했던 지난 세월에 대한 저항은 농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고, 농사는 자율적인 인간으로의 길을 열어주었다. 삶을 선택하듯 시간 역시 자신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을 때만이 인간적인 삶이라 생각된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지 일하기 위해서 사는 것인지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문제와 직결되어있는 노동시간의 분배는 노동의 의미를 새롭게 제기한다. 과거와는 달리 노동환경의 침체와 과학 기술의 발달로 일자리가 감소되고 그에 따른 대량실업 사태는 이미 예견되어진 일이었다. 이에 대해 프란츠 알트는 노동시간 단축과 노동의 유연화라는 고전적인 사회적 전략을 현대적인 환경정책과 결합하여 일관되게 추진하면 대략 15년 안에 ‘모든 사람을 위한 고용’이 가능하리라는 진단을 한다. 즉 경제의 생태화가 이루어질 경우에는 사방에 일자리가 생긴다고 한다. 예를 들어 앞으로 폐쇄될 원자력발전소에서 일자리 하나가 사라지면 풍력발전산업에서 다섯 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안식년’ 개념을 도입하여 10년에 한번꼴로 1년의 교육 안식휴가를 갖는다면 노동세계의 창조성과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예측한다.


우리는 새로운 노동과 시간 문화를 만들 수 있다. 이제까지 누려보지 못한 자신을 위한 시간을 말이다. ‘시간들’의 조화로운 상호작용은 삶에 깊은 의미를 부여할 것이다. 이제 기술적인 측면에서는 이미 생태적 경제기적의 모든 조건이 충족되어 있다고 한다. 다만 정치적인 조건이 충족되어야 하는데 이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모든 생명에 대해 더 많은 외경심을 품어야 한다고 알트는 안타깝게 지적한다.


2. 생태적 에너지


“150종의 동식물 멸종과 2만 헥타르의 사막 증가와 8,600만 톤의 비옥한 토양의 유실, 1억 톤의 기후변화 가스 발생, 매일 인구 25만 명 증가.” 1992년 리우 환경정상회담에서 발표된 사실이다. 이 회담의 최대 관심사는 기후변화협정을 채택하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기후재난은 인구폭발, 빈곤, 기아, 에너지 문제 등과 같이 이미 오래전부터 알려진 대부분의 전지구적인 위험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나 일상 정치는 이 깨달음을 다시 무시해버렸으니, 미국의 부시 대통령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2003년의 펜타곤보고서의 내용을 아는 그로서는 그러한 재앙의 방지보다는 미국 석유메이저들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냈다. 하지만 거대한 산업단지들과 많은 승용차들, 그리고 고농도의 농약잔류물로 인한 공기오염이 전 세계에서 토양침식을 초래하고 있으며, 또한 열대우림의 파괴로 인해 전지구적인 온난화는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환경재난의 주원인으로서 프란츠 알트는 5가지을 제시한다. 에너지 정책, 무책임한 에너지 생산, 잘못된 에너지 소비행태, 무의미한 에너지 낭비, 자동차에 대한 도착적인 집착 등이 그것이다. 이들은 우리 삶에서 인간의 이기(利己)와 편리함을 이유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사용되어지고 또 행동함으로써 나타나는 것들이다. 에너지 정책에 있어서 시한폭탄과 같은 원자력발전소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부안에 방사능 핵폐기물처리장을 건설하려다 취소된 사건을 통하여 그 미숙함과 생각없음을 읽게 한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사고와 같은 경우는 남의 얘기가 아닌, 단지 시간 문제일 뿐이라는 사실을 또한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결국 잘못된 일상의 에너지 정책이야말로 가장 큰 환경 재난인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에너지 정책을 가지고 세계 기후를 구해낼 수는 없겠는가? 여기서 알트는 몇가지의 대안을 제시한다. 태양광 집광판, 태양전지, 태양수소 같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하는 경우와 수력과 풍력 그리고 식물로부터 얻는 바이오매스 등의 사용이 그것이다. 물론 아직은 기술과 비싼 자재로 인해 더디게 발전하고 있지만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그렇게만 된다면 미국의 이라크 공격처럼, ‘석유를 위한 전쟁’이 아닌 ‘태양에 의한 평화’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21세의 중대한 정치적 문제라고 알트는 강조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에너지 소비행태와 무의미하게 에너지를 낭비하는 정책에 대해서는 영향력있는 정치에 의해 에너지 생산과 공급 시스템의 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중앙집중적인 에너지 독점에서 분산적인 에너지 수급으로 나아가야 하고, 에너지 절약을 생활화하는 것이 중요한 에너지 자원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가운데 특히 농경지에서 생산하는 에너지에 관심이 많다. 다년생 식물인 갈대와 나무찌꺼기를 이용한 바이오매스는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 나의 삶에서 적용가능한 일이라 생각되기에 보다 많은 자료수집과 연구를 통해 현실적인 이용가능성을 타진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3. 생태적 교통전환


생태적인 전환을 향해서 우리의 상상력과 희망이 솟아나게 만들려면 대안적인 총체적 구상이 필요하다. 생태적인 총체적 계획만이 근본적인 개혁에 필요한 상상력을 충분히 분출하게 할 수 있다. 이런 차원에서 프란츠 알트는 독일제1공영방송에 보도된 사례를 예시하면서 생태적인 교통체계로의 전환을 구상한다. 즉 자동차를 기반으로 한 개인 교통수단을 억제하되, 대중교통과 자전거도로와 보행자도로를 확충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알트는 장래성있는 교통정책의 목표로써, 버스나 철도가 자동차교통의 틈새를 보완해주는 것으로 되어있는 현재의 상황을 현대적인 대중교통체계의 틈새를 자가용이 보완할 수 있는 상태로 바꾸자고 제안한다. 이를 위해 스위스의 예를 따라 전국토를 덮는 대중교통망을 확충하는 것이다. 그러면 거의 모든 시민이 대중교통 시스템 연결 지점에서 2km 이상 벗어나지 않은 곳에서 거주하며 일할 수 있는 것이다. 게다가 원거리 수송을 철도에 맡기되 구조적으로 취약한 지역과 사회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철도를 확장하고 유지하는 것은 미래지향적 과제가 공공의 과제로 여겨지도록 한다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맥락에서만 민간에게도 맡길 수 있다. 우리의 경우에도 고속철도(KTX)가 개통되고, 철도공사가 출범하면서 이용자에 대한 혜택이 줄어들고 있으며, 서민용 객차의 배차 빈도가 줄어드는 등의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이는 알트의 지적처럼 재고해야 할 문제일 것이다.


이러한 생태적 교통체계는 인식의 전환에서부터 출발하지만 이 역시 정치가들의 올바른 사고 판단과 개인적 욕망을 배제한 정치적 결단을 요구하게 된다. 자가용 중독증에 걸린 많은 사람들의 인식 전환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잘 알 수 있다. 이는 값싸고 편리한 대중교통 수단의 개선이 먼저 전제가 되어야 한다.


4. 생태적 농업


百尺竿頭(백척간두), 우리의 농업이 처한 상황이다. 한 발 잘못 내디디면 땅끝으로 떨어질 것만 같은 위기감이 팽배하고, 무엇보다 패배감과 절망만 남아있을 뿐이다. 무엇으로 이 농촌을 살릴 것인가? 소농인 대다수의 농민들은 생활고로 허덕이고, 생각있는 젊은이들은 도시로 삶의 터전을 옮겨가니, 학교는 폐교가 되고, 폐교가 된 곳에 젊은이들은 다시 돌아올 수 없다. 이러한 의미에서 프란츠 알트의 ‘생태적 경제기적’은 에너지와 기후뿐 아니라 현재 나의 문제로 더 크게 다가온다. 딜레마에 빠진 농촌/농업문제를 해결하고픈 열망만큼이나 절망도 깊어지지만, 그래도 ‘위기가 기회’라는 알트의 기대처럼 이러한 위기상황을 돌파할 수 있는 지혜를 모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 지혜는 생태농업/친환경농업으로의 전적인 전환으로부터 온다. 비록 관료의 안이함과 기득권이 그 돌이킴에 장애가 될지라도 이 길이 시대의 조류이자 대세라고 인식된다면 거침없이 가야 한다. 프란츠 알트의 지적처럼, 생태농업으로의 전적인 전환을 가능하게 하는 조건들을 한국적인 상황으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을 것이다. 농업연구기관인 농업기술센터의 인적・재정적 확충을 통한 유기농업의 기술과 자재를 개발하고, 농협의 민주화를 통해 유통기능의 활성화하고 유기농 전환에 필요한 자금을 대여하며, 자생적인 시민운동의 경험이 없는 우리의 경우에는 쿠바의 예와 같이 관청/군청이 나서서 농민들을 일깨우고 독려하며 정책을 펴나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군청과 농협과 농업기술센터의 삼각 구도가 이루어져야 기본적인 토대가 구성되는 것이다. 쿠바나 서유럽의 일부 나라들의 완전유기농업은 국가가 제도적・구조적으로 지원하고 있어 성공할 수 있었던 경험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다. 문제는 농민들의 의식전환이다. 성공의 관건이자 실패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문제가 그것이다.


그러나 프란츠 알트의 제시는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맞지 않는 점도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농부가 에너지를 이용해 수익을 올린다는 것과 또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사회적・구조적・제도적 정책이 선행되어 있지 않아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소득과 상관없이 자급자족하는 정도로만 짓는다면 알트가 제시한 방법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미 화학물질의 만연으로 땅이 황폐화되어 유기농업을 할 수 있는 땅 힘이 없다는 것이 더욱 현실성이 없다. 게다가 유기축산과 유기농업을 병행해야 진정한 유기농이라 말 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땅이 적어 유기축산 또한 어려운 실정이다. 그러나 유기농법의 순환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과제이기에, 나의 경우에는 닭과 개를 길러 거기서 나오는 부산물을 발효시켜 퇴비로 이용하고 있다.


5. 생태적 고용


현대는 ‘두려움’의 시대이다. 실업, 기후재난, 테러 등 온갖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지만 우리가 우려하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우리가 영향을 미치고자 하는 미래상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그 가운데 노동의 위기는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고자 하는 고민을 통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대량실업 시대에는 노동의 의미, 노동의 질, 노동생산양식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그리하여 창조신학자 매튜 폭스(Matthew Fox)는 노동의 세계를 영성화함으로써 수백만의 새로운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 세계를 영성화한다는 것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의해서 후손에게 축복이 도래할 것인가? 내 일에 기쁨을 느끼고 있는가? 내 일이 누구에게 이로울까? 나의 일은 정말로 어떤 소명일까 아니면 일거리에 불과한가?” 그런 그에게 있어 의미있는 노동은 예배, 즉 창조에 참여하는 일인 것이다. 의미있는 일은 지속가능하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노동이다.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노동은 품위있는 노동이며, 신앙을 실천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그가 보기에 수백만의 실업자는 창조에 어긋나는, 생태적이지 못한 경제의 증거인 것이다.


이와 더불어 생태문제의 일부는 우리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너무 적게 갖기 때문에도 발생한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것을 너무 적게 즐기기 때문에 우리는 점점 더 많이 그리고 점점 더 빠르게 새로운 것을 필요로 한다.


맺음말


프란츠 알트는 이 책에서 노동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태양에너지를 활용하고, 자동차에서 대중교통체계로 개편하며, 생태농업으로 전환하여 토양과 먹거리를 살려나가면서, 생태적 완전고용의 경제기적을 제시한다. 이렇게 알트는 전 지구적인 생태적 사고와 윤리를 기반으로 한 경제행위는 생태적인 경제기적을 이룩하기 위한 결정적인 요소라고 한다. 하지만 생태적인 상상력의 부족이 경제위기 극복을 가로막고 대량실업의 감소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특히 정치가들의 생태적인 마인드 부족과 사욕은 더 큰 장애물로 대두된다.


우리의 경우에 있어서도 동일하게 고찰해야 할 상황이다. 즉 지엽적으로는 알트의 견해가 우리의 형편과 맞지 않는 면도 있지만 큰 틀에서는 어느 하나 틀린 얘기가 없다. 다만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인드가 되어 있지 않다는데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이른바 ‘선각자’들의 헌신적인 활약이 기대되는 시대라 할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알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위기의 해결을 위한 비전이다. 이를 위한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이 아니다. 부족한 것은 변화를 가져오려는 정치적인 용기와 사회적인 의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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