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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류영모

다석 류영모의 종교사상 4강(박재순)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5.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다석 류영모의 종교사상

 

4강, "가온찌기"

- 이제, 여기 나의 삶 속에서 영원한 생명의 중심을 찍기 -

 

- 박 재 순 -


다석이 신분질서를 강조하고 복고적인 유교전통을 강력히 비판하면서도 가온찌기, 중심을 찍는 것에 대한 그의 논의는 유교, 특히 공자의 중용사상을 받아들이고 있다. "공자가 중용을 왜 말했는가? 사람의 목숨은 정중용(正中庸)에 있고 용기가 나와서 일을 바로잡는 것이다. 인간은 하나의 목적을 가진 과녁과 같다. 몸은 활이고 고디 정신은 화살이다. 몸이란 활에다 정신이란 화살을 끼워 쏘아 중정(中正)을 얻을 수 있다." 여기서 다석이 몸을 활로 보고 마음의 곧음을 화살로 봄으로써 몸과 맘의 긴밀한 관계를 드러내고 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본다.


1. 지금 여기서 사는 나


가온찌기는 지금 여기 사는 나의 몸과 마음에 대한 집중이다.


1) 이제 여기에 나는 없다

모든 삶은 지금 여기에 사는 나의 삶이다. 다석은 '나의 삶'에 집중하고 파고든다. 그에 따르면 "이제 여기에 나는 없다." '나'는 零, 제로, 無다. 이제 여기의 點일 뿐 시간 공간을 쓸 수 없다. 자리만 있을 뿐 없는 존재다(位而無).

 

이제에 사는 사람은 아무 걸림이 없고 자기의 때를 사는 것이므로 흥겹고 자유롭다. 詩經에서 詩는 時 도는 是와 통한다면서 이제의 삶이 나 자신의 자유롭고 흥겨운 삶임을 말한다: "詩軸이 서 가지고야 올(理)이고 이(是-)고가 날 것입니다. 詩는 일어나는 짓거리입니다.(興於詩) 詩經에 時, 是로 통합니다. 사는 때는 사는 이의 때, 이 때, 제 때 -이제-ᄇ니다. 이것이 목숨의 올(命理)이요 살라는 말씀(生命)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짓이 안 날 놈이 어디 있겠으며 제로라 일어나지 않을 이가 있으리까?"(제소리. 새벽 1955. 7월호. 다902)


2. 가온찌기


'나'는 오직 걸어가는 한 점 '․'이요, 지순한 진리에 명중하는 것은 '한울'이다. "거름거름 걸어만 가고지고, 내가 세상에 있기는 消息하는 '․'요. 한울이로다, 지순한 진리에 명중하기는!"(1,650) 오직 내가 할 일은 진리와 생명의 중심인 '하늘'을 맞추는 일이다. 이것이 인생의 목적이고 사명이다.


빛나려면 깨져야지

진리와 생명의 중심인 하늘을 내가 맞추려면 사욕에 사로잡힌 내가 깨져야 한다. 몸의 사욕과 물욕에 사로잡히면 시간과 공간에 붙잡히고 세상을 옆으로 기게 된다. 그러므로 몸뚱이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삶은 물질을 섬기는 우상숭배생활이다. "목숨은 썩는 거야 그러나 말씀은 빛나는 거야. 빛 날래면 깨야지, 깨져야지. 죽어야지."(1,841-4) 내 뜻 없이 볼 때 바로 보고 분열 없는 절대의 진리에 이를 수 있다. 그럴 때 비로소 "영원한 평화가 깃들이는 그늘...완전과 성숙이 영그는 영원한 그늘에...들게 된다."(1,841-4)


가온찌기

하나님께 위로 솟아오르려면 먼저 마음에 한 점을 찍어야 한다. 다석은 가온찌기를 이렇게 표현한다: "心線路 接境이오 一線이다 前進이 一路다 直上 一點心." 풀어보면 "마음에 길이 생기고 끝에 이른다. 하나의 선밖에 없다. 앞으로 나가는 한 길밖에 없다. 곧게 위로 올라 마음에 한 점을 찍는다." 마음이 경계에 부딪치면 앞으로 나아갈 길은 마음에 한 점을 찍고 위로 곧게 올라가는 길 밖에 없다. 내 속에 영원전부터 내려오는 생명줄이 있고 이 줄의 끄트머리가 '나'다. "우리의 숨줄은 하늘에서부터 내려온 나다. 우리의 숨줄, 영원한 생명줄을 붙잡아야 한다. 이 숨줄 끝을 붙잡는 게 가온찌기다."(정2. 1,737-40)

가온찌기는 영원의 한복판을 찍어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 "가온찌기는 고디고디 신성하고 영특한 영원의 한복판을 명중시켜 진리를 깨닫는 것이다."(1,734) 가온찌기는 ' ', '   '이며, "가고가고 영원히 가고 오고오고 영원히 오는 그 한복판을 탁 찍는 가온찌기, 진리를 깨닫는 순간, 찰라 속에 영원을 보는 것"(1,734)이다.

다석은 가온찌기를 한글 ㅡ ㅣ 로 푼다. "ㅡ ㅣ .는 수평선 수직선 태극점, 세상 죄의 수평선을 義의 수직선이 뚫고 올라가서 아버지 가슴 한가운데 도달하는 가온찍이 점심이 으이아요 십자가다."(1,288) 한글과 십자가 신앙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다. 가온찌기는 세상 죄의 수평선(ㅡ)을 義의 수직선(ㅣ)이 뚫고 아버지 가슴 한가운데() 도달하는 것이다. 가온찌기는 위로 솟아올라 하늘 아버지 가슴 한가운데 이르는 것이다.

다석은 가온찌기를 가온,  으로 쓰고,  을 ᄀ, ᄂ,  로도 풀이한다.  은 무한과 영원에 끝을 찍는 것이다. "무한과 영원에 끝이 찍힌다. 영원한 기역(ᄀ)과 영원한 니은(ᄂ) 가운데 한 점(․)이 찍힌다. 가온찌기(․)가 끝이다." 그리고 가온찌기한 끝은 "一點靈明, 우주의 켜진 하나의 불꽃이다."(깨끗. 1, 753-6)


바탈 살려라

사람은 만물의 근원이요 밑둥이다.(건. 버23. 1, 793-6) 사람의 바탈이 하늘과 통하고 영원에 닿아 있기 때문에 바탈, 속알을 꿰뚫고 자기 생명의 목적과 사명을 완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국전통사상의 핵심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지는 삼일신고 진리훈의 문귀 '성통공완시'(性通功完 是)를 다석은 "바탈을 트고 마틈을 마츰이 이다"고 풀이한다.(55.10.6) "바탈이 뚫리고 통하여 자기 사명을 완성하는 일이 나의 일이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자기 본성을 통하고 역사와 사회 속에서 하늘이 준 사명을 이루는 것이다. 삼일신고 마지막 결론에 "안으로 본성을 통하고 밖으로 사명을 이룬 사람은 영원한 즐거움을 얻는다"(性通功完者 永得快樂)고 했다.

 

3. 가온찌기 無等 세상


'나'를 한 점으로 찍고 하늘과 영원을 살면 걸림 없이 자유로우면서 서로 하나되고(大同) 평등한 세상을 이룰 수 있다.


1) 未定論과 窮神知化

지금 여기 나의 한가운데를 점으로 찍으면 이 한 점밖에 없고 이 한 점에서 영원한 하나님과 통할 수 있다. 과거도 미래도 없고 있는 것은 오직 지금, 여기만 있으므로 모든 일은 지금 여기의 한 점에서 결정된다. 그러므로 다석은 기정론, 결정론을 거부하고 미정론을 내세운다. 하나님과 내가 한 점으로 만나는 가온찌기에서 모든 일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욕심과 집착에 매인 마음에 가온찌기로 한 점을 찍으면 '마음을 마음대로'하게 되고 마음이 자유로워지면 일을 이룰 수 있다.(하게 되게. 1, 809-12)

다석은 '이 세상 中道를 사는 노래'( 노래 누리  )에서 몸  하루를 가온찌기로 살면 늘 법도에 어긋나지 않고, "오늘 하루가 자기의 날이고 영원을 사는 날"이라고 했다. 불평불만없이 기쁘게 사는 삶이 "늘늘늘늘 늘느리야" 노랫가락이 터져 나온다고 했다. 다가 올 "하늘 나라를 위하여 "오늘 우리가 "새것, 옳은 것을 힘껏 하여...햇것, 올것이 밝아지는 하루"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는 마음을 모으고 살고 "마는 마음이 모인 몸"은 하늘에 있으면 오늘 삶은 늘어난다.

가온찌기를 통해 " 은 항상 窮神하는 자리에 가 있어야 한다." 궁신은 위로 하나님을 탐구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탐구하면 지화(知化), 자연 자체의 변화를 알게 된다. 하나님을 탐구해서 하나님과 통하면 모든 인간, 만물과 통할 수 있다. 그러면 "맴에서 떠나 자유, 몸에서 떠나 평등이다."(매임과 모음이 아니! 버10. 1, 741-744)


2) 가온찌기 無等 세상

다석의 가온찌기는 신비한 명상과 내면적 수행에 머물지 않고 끝끝내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기의 욕심과 주장을 점으로 가온 찍어 버리면 자유롭게 되고 남을 섬기는 평등, 無等 세상을 이룰 수 있다. 가온찌기는 사사로운 자기의 중심을 비우는 것이고 참된 중심, 하나님 중심을 세우는 것이다.

이것을 다석은 '아 가온따위 가온맨꼭대'라는 글로 표현한다.


내 를 내가 가지고 제절롤 제가 쓰 뉠

맨들 수 잇사오릿가 돼됨도[될 수가] 잇사오릿가

두어라  둘[하나님 아들] 솀판 땅땅따딜 따위가온(다6. 26)


내 마음에 가온 .을 찍어 하늘을 맞춤이 땅 위에 하늘나라를 든든히 세우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