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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상 이야기/류영모

다석 류영모의 종교사상 5강(박재순)

by 마리산인1324 2006. 12. 15.

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다석 류영모의 종교사상

 

5강, "생각"

- 내 존재의 끝을 불사르며 위로 오르는 것 -

 

- 박 재 순 -

1.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


1)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데카르트)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데카르트의 말은 생각하는 존재로서의 인간의 주체성을 확인하는 서구근대철학의 원리이다. 데카르트는 다른 모든 존재를 의심할 수 있어도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나의 존재'는 의심할 수 없다고 보았다. 데카르트에게 생각은 '나'의 기능적, 술어적 행위다. 생각의 주체인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했을 뿐 '생각하는 나' 자신에 대한 의심과 문제제기는 없었다.


2)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다석)


다석이 "해요 달, 저게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이다. 있는 것은 오직 나뿐, 그 중에서도 생각뿐이다."(1, 853-6)고 했을 때 그는 데카르트의 관심과 원리를 넘어섰다. 해와 달의 객관적인 존재와 운동에 대한 자연과학적 관심을 넘어서서 '생각하는 나'와 내가 지금 하는 '생각'의 세계, 주체성의 세계로 나아갔다.


3) 생각하는 주체의 성숙과 해방


서구의 계몽철학이 타율적 전통과 비합리적 권위로부터, 다시 말해 타자(타인, 자연, 하나님)의 지배로부터 인간 자아의 해방을 추구했다면 다석은 더 나아가서 자아로부터 타자를 위한 삶, 자아와 타자가 귀일되는 삶에로의 해방을 추구했다. 성숙한 사람은 생.사를 넘어서고, 이.해(利害)의 시비에서 벗어난 사람이다. 생각하는 존재로서 성숙한 인간은 자아로부터 자유로운 존재, 타자를 위해 열린 존재이다.


2. 존재행위로서의 생각


1) 존재의 끝을 사름


"(나는)...생각의 끝머리요 생각의 불꽃이다."(1,740) "생각의 끄트머리가 불꽃처럼 자꾸 피어오르기 때문에 '나는 존재한다'."(1,740) 다석에게 생각은 단순히 인식론적, 추론적 행위가 아니라 나의 존재와 본질을 형성하는 행위이다. 그에게 생각은 순수한 논리적 추론이 아니라 "사랑이 있을 때 피어나는 하나의 정신의 불꽃"(정2. 1,740)이다.


2) 말씀 사름


말씀의 근원은 하나님의 가운데이고 그 말씀이 사람 속에서 불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속에서 불타는 것이 바로 생각이다. "사람은 말씀이 타는 화로다."(신. 1,882-3) 다석은 이것을 中庸으로 설명한다. "말씀은 우리 속에 타는 불이다...中庸이란 속에서 쓰여진다는 말이다. 우리 속에서 영원한 생명...하나님의 말씀이 타고 있다."(신. 1,882-3) 속에서 말씀의 불, 생각의 불이 타오르면 중용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3) 솟아오름 : 살리는 생각


다석에게 생각은 근심, 걱정, 번민이 아니며, 헛된 공상이 아니다. "머리를 무겁게 수겨 떨어뜨리며 하는 생각은 사람을 죽게 하는 생각"이다. 제 머리를 무겁게 하는 생각을 하는 이는 썩은 졸개(腐卒)이며, "거룩한 불꽃을 도적질하는 자라 스스로 심판이나 기다리는 자가 된다."(1,907)

생각을 해야 사람노릇을 할 수 있다. 생각은 일상적인 삶을 위한 실천적인 일이다. "생각 없이 되는 대로 먹고 입고 자고 이는 사람은 食蟲이다." 먹고 입고 자고 일어나는 일을 어떻게 잘 할까 생각하면서 사는 사람은 철학자이고 제사(祭司)라고 할 수 있다.(1,907)


3. 신통과 한통: 나는 생각, 하는 생각


다석에게 생각하는 것은 합리적 논리적 추론에 머물지 않고 깨달음과 영감으로 이어진다.


1) 깨달음의 학문


서양에서 학문을 'science', 'Wissenschaft'라고 하는데 모두 '앎', '지식'을 뜻한다. 서양에서는 객관적인 지식과 정보, 논리를 탐구하는 경향이 있다. 동북아시아에서 학은 "모르는 것을 배우고(學), 의혹을 묻는 것(問)이다." '學'은 "학교에서 선생이 가르치고 학생이 배우는 것을 나타낸" 그림말이다. 서경(書經)에서는 학(學)을 "가르침을 받아서 깨달음을 전하는 것"(受敎傳覺悟)이라고 했다. '배움'을 뜻하는 '學'은 가르침과 깨달음이 몸과 맘에 '배게' 하는 것이다. 동양의 글읽기는 글이 몸과 맘에 배게 하는 것이다.

생각은 역사, 사회, 우주의 얼크러진 삶의 실마리를 푸는 일이다. 우주만물은 '올'이고 '끈'이고 '줄'이다. 생각은 이 '끈'과 '줄'을 '맨 처음 말씀과 함께 계심'에 매는 일이다.(제소리. 1,908) 말씀과 함께 계신 하나님께 매어질 때 삶은 시원하게 뚫린다.


2) 신통 : 궁신지화


신을 탐구하고 인간의 바탈을 탐구해서 신과 바탈에 통해야 한다. 신과 인간과 자연에 두루 통하는 것은 말씀이다. 생각은 말씀을 사르는 것이고 말씀은 두루 통해서 한통누리를 이루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주에 찼다. 우주가 다 하나님의 말씀이다...말이 통하고 이치가 통하고 신이 통하여 한통 누리를 이루어야 한다."(속알. 1,861-4)

"마음이 뚫리고 앎음알이가 뚫려야 정말 속알이 엉큼 엄큼 자라게 된다."(속알. 1,861-4) "입에 밥이 통하고 코에 공기가 통하고 귀에 말이 통하고 마음에 신이 통한다...우주와 지구를 통째로 싸고 있는 호연지기가 나다."(속알. 1,861-4) '나'는 우주를 싸고 있는 호연지기이고 신은 "없이 계신 분이다." 생각해서 호연지기와 통하고 빈탕한데 계신 신과 통하면 시원하다. 다석은 "(없이 계신) 신은 언제나 시원하다."(밀알1. 1,817-20)고 말한다. 신에 통하면 영생에 이르고 "죽음은 없다."(밀알1. 1,817-20)


3) 하나님에게서 오는 생각


"하느님이 성령으로 내게 건네 주는 것이 거룩한 생각이다...거룩한 참 생각은 하느님과의 연락에서 생겨난다."(1,53-54) "하느님과 연락이 끊어지면...질컥질컥 지저분하게 사는 짐승이다."(1,55) 하나님과 교통하며 생각의 불꽃을 피어 올릴 때 사람 구실을 한다.

참된 생각, 거룩한 생각은 하나님과 연락된 것일 뿐 아니라 하나님과 뗄 수 없이 결합되어 있다. "사람이 생각하는 곳에 하느님이 계신다.(念在神在)"(1,53-54)


4. 깨어서 끝에 사는 삶


생각하는 사람은 옳고 그름에 매인 상대적인 지식을 넘어서 진리를 깨우친 사람이요, 생사를 초월해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통하는 사람이다. 생각하는 것은 존재와 삶의 끝에서 말 숨을 쉬는 것이다. "말숨 쉼은 영원을 사는 것이요 죽음 이후를 사는 것이다."(신. 1,882-3) 생사를 초월한 사람은 "깬 사람이요 끝에서 사는 사람이다." "생사를 초월하면 유무도 초월한다. 있어도 걸리지 않고 없어도 걸리지 않는다."(말씀. 1,888) 생각하는 사람은 주체적인 자유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