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함석헌기념사업회
http://www.ssialsori.net/data/ssial_main.htm
함석헌의 역사이해 -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중심으로 -
김 진
1. <뜻으로 본 한국 역사>의 의미
함석헌(1901-1989)은 한국 현대사가 낳은 매우 독창적인 종교사상가요,역사철학자요,독특한 문체를 지닌 시인이며,행동하는 지성인 이었다. 송건호씨는 동아일보 편집부장 시절을 회고하면서 ,1950년대에서 70년대에 이르는 동안 우리역사가 몹시 어둡고 광기가 지배할 때에,수천명의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외롭게 해내었던 광야의 소리 였다고 그를 평하였다. 그의 풍모를 회상하는 현재 30대이상의 사람들에게 그의 모습은 우선 하얀 두루마기에 하얀 수염을 휘날리며 거니시던 자유인의 모습을 지닌 그를 기억한다. 30대 이하의 젊은 이들에게 그는 차라리 전형적인 한국인의 신선모습이며 옛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함석헌은 지나가 버린 옛 사람이 아니다. 그는 현재를 살아가는 그 어느 신세대 청년들 보다도 생각하는 바가 젊고 앞서 있었다.그는 고난으로 점철된 한국 현대사의 역사현실 들판에 우뚝서서 깊이 사색하는 거목을 연상케한다.
함석헌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1935년경 ,그가 35세의 젊은 역사선생으로서 정주 오산학교에서 교편을 잡던 시절에 신앙동지들과 함께가졌던 수양회에서 발표했던 것을 기초로 하여 그 처음 초고를 쓴 것이다.그 초고가 해방과 함께 민족이 분단 된후 1950년에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라는 제목으로 서울에서 발간되었고,다시 그의 사상이 깊어지고 새로워져서 1965년 <뜻으로 본 한국역사>라는 제목으로 현재의 증보수정판이 나오게 되었다. 정주 땅의 오산 학교는 그의 모교였으며,남강 이승훈 선생의 민족정신을 기초로 세어진 순수 민족학교로서 젊은 혼의 사람들을 길러내자는 뜻이 있는 학교였다. 함석헌이 동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모교의 강단에 역사교사로서 섰을 때,그의 가슴 속에 있었던 것은 오직 일편단심 세가지 뿐이었다고 초판본 서문에서 술회하고 있다. 그 첫째는 잃어버린 나라에 대한 사랑,둘째는 사실에만 진실하려는 과학적인 정신,그리고 셋째는 신앙에 기초한 믿음에로의 의지 뿐이었다고 한다.
문제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수만권 장서가 완비된 도서관이나 연구실에서 충분한 역사 자료들을 참고하여 써낸 전문적인 역사 교과서도 아니고 전문적인 학술서적이 아니다. 일본당국의 검인을 받은 검정교과서 몇권만을 구해 볼수 있었던 열악한 형편에서 평안도 어느 시골 민족학교 역사선생이 깊이 사색하고 또 사색하여 혼으로써 써내려간 작품이다. 그의 관심은 오로지 이 땅의 젊은 이들에게 조선 역사의 사실을 사실대로 바르게,그러나 절망하지 않고 뜻있게,그리하여 인생과 우주의 진실에 눈을 뜨게하려는 교사로서의 진실한 맘으로 도란도란 이야기 하듯 말하려는 것이었다.이 책이 태어나게 된 삶의 자리 곧 1930년대의 민족의 수난,절망가운데 빠져드는 민족정신의 위기,더 이상 아래로 내려 갈수 없는 민중들의 고난의 삶,계급사관에 기초한 급진주의자들의 혁명사상,타계주의로만 치닫는 종교들의 현실도피등을 고려하지 아니하고서는 이 책은 바르게 이해되지 아니한다.한마디로 민족이 온통 고난속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고난을 이기고 고난의 뜻을 더 깊게 이해함으로서 도리혀 고난을 새 생명을 낳는 창조적 산고로서 파악하게 하려는 것이었다.이 책은 한국역사를 하나의 사관을 가지고,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전체를 꿰뚫어 해석해 본 최초의 한국 역사철학서 인것이다.
2. 고난은 생명의 근본원리이며 한국사의 주조음은 고난을 통한 뜻의 실현
중고등학교 교과서로서나 역사학과 참고서로서 사용 하기엔 ,시대구분의 연대설정이나 실증적 사실규명에서 오류가 많고,철학과의 역사철학 강독자료로서 사용하기엔 너무나 주관적이요 신앙고백적 서적인 이 문제의 책이 왜 오늘도 간행회수 30판을 넘어가는 놀라운 판매부수를 기록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에게 주목을 받고 영감을 주는 책이 되는 것일까.사실 정직하게 말해서 오늘 이시대를 이끌고 가는 깨어 있는 사회 지도자치고 아마 이책의 영향을 아니받은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이 사람의 혼을 끌어당기는 그 힘의 원인을 다음 몇가지점에서 말해보려고 한다.
첫째, 이 책은 전문학자의 딱딱하고 객관적인 교과서같은 책이 아니라 ,그 안에 용암과 같은 열과 광휘를 안고 있는 진실을 추구하는 정신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책의 문체는 우선 살아있다. 글들이 살아서 생명력이 넘치면서,저자의 영혼 속에서 불타오르던 열기가 독자에게 전달된다. 사실은 함석헌은 감정적 흥분을 몹시 경계하는 사람이다. 깊이 사색하고 합리적이고 과학적이려고 매우 힘쓰는 사상가이다. 종교적 진리와 과학적 진리가 충돌하는 경우에는 과학적 진리를 받아드리겠다고 하는 합리적 정신에 투철한 종교 사상가이다. 그러나 그의 합리주의는 차거운 형식적 합리주의가 아니다. 본래적 이성은 진리로부터 오는 빛과 열을 지니다고 믿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이책은 역사를 전공하는 교수로 부터 평범한 공장의 노동자에 이르기 까지 진실을 추구하려는 마음의 문을 열기만 하면 이 책이 지닌 생명력에 끌리는 것이다.이 책의 문체만이 아니라 그의 손끝에서 나온 모든 글들은 사실은 손끝에서, 머리의 두뇌세포의 단말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의 혼의 용광로 속에서 순금으로 정화되어 나온 글들이다. 그래서 그의 글들은 살아 있고 힘이 있고 ,잠자는 영혼들을 불러서 일깨운다. 둘째, 이 책은 우리들의 일상적인 상식과 타성이 머무르기 좋아하는 안전지대를 그 밑바닥에서 흔들어 버리고 우리로 하여금 삶과 생명의 진실을 직시하도록 촉구하는 메몰찬 소리로 가득차 있다. 우선 이책이 지닌 역사를 해석하고 서술하는 사관이 새롭다. 이책을 뚫고 흐르는 주조음은 생명의 근본 원리는 고난이라는 것이며,역사를 지어가는 진짜 주인공들은 영웅 또는 정치엘리뜨가 아니고,지식인이거나 중산계층도 아니고, 전문 경영인과 직업관료계층이 아니라 그가 씨알이라 이름부친 수많은 보통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씨알은 민중,또는 민(民)을 순수 우리말로 풀이한 독특한 글자이지만 씨알의 개념은 정치 사회적 계급개념이라기 보다는 보다 순수한 인간학적 존재론적 개념이다. 다시말하면 씨알은 맨사람들,더이상 소유가 그의 존재를 규정하는 허위의식에 사는 자들이 아니고 존재 그 자체와 살을 맛데고 사는 삶의 맨 바닥 사람이다. 진솔하게 살려는 사람들이다. 양심과 지조를 지키면서 살려는 사람들이다. 역사의 죄악과 역사의 쓰레기를 바다처럼 맨 마지막 끌어 안고서 그것을 말없이 받아드리고 정화해 가는 사람들이다. 역사와 삶의 죄값을 더이상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겨 버릴수 없는 마지막 바닥사람들이다. 농민 ,어민,노동자,도시 빈민들 그리고 일반 서민들이다. 생명의 근본원리가 고난이기 때문에 ,고난은 생명이 있는 곳엔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고난을 잘 참고 지내면 후일엔 상급이 있고 고난도 없고 슬픔도 없는 극락 천국에서 편히 잘 살 것이라는 일반 도덕적 교훈과 종교적 가르침은 정신력과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위로 격려하는 말일뿐 삶의 진실은 아니라고 함석헌은 잘라 말한다. 생명이 자라고,깊어지고,높아지고,더욱더 정신적으로 영적으로 승화되기 위해서 생명은 고난을 그의 풀무불로 삼는다. 셋째, 이 책은 한국사를 그 전체로서 보게하는 역사서이기는 하되 뜻을 가지고 해석하고 창조해가는 역사철학서요,삶과 생명과 우주의 근본 뿌리를 생각하도록 이끄는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흔히 역사책이라고 하면 연대외우기,역사적 중요 인물과 사건 암기하기등이 중고등하교 시절 역사에 대한 우리의 따분한 인상이요 기억이다. 의 대학에서 역사연구라고 하더라도 매우 단편적이고 특정 시대사의 전문적 연구에 그치기가 일수다. 그러나 이 책 안에는 본격적으로 역사의 근본문제와 씨름하고 대면하도록 독자를 그 문제 앞에 몰아 세운다.
함석헌의 역사 이해는 그의 종교사상이 그 밑바닥에 깔려 있지만 통속적인 섭리사관이거나 관념론적 정신사관이거나 혹은 어떤 형태이든지 역사 결정론이 아니다. 역사 현실사건,역사를 메고가는 씨알, 그 역사 사건들을 통해 구현해가는 뜻, 그리고 그 사건들 안에서와 위에 현존하는 절대자 하나님은 모두 맛물려 돌아가는 분리할수 없는 근원적 실재들이요 주제들이다. 함석헌은 기독교인이지만 정통적 기독교의 교과서적인 교리주의를 버리고 성서의 근본적 가르침을 파고 들어간 기독교인 이다. 그래서 그의 종교사상은 언제나 정통 교리신학과 정통교회로 부터 백안시 당하고 이단 취급을 받는다.그에 의하면 실재를 양 끝에서 보면 한 쪽은 하느님이고 또다른 한쪽은 세계현실인데,세계현실의 알곡은 씨알들의 가슴이다. 하느님과 창조적 역사현실은 함께 자라고 함께 고난과 희열을 맛보고 함께 고통하고 함께 슬퍼한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진짜 살아계신 사랑의 하느님 이기 때문에 군주 제왕처럼 천상보좌에 높이 앉아 있지 아니한다.그의 종교사상 특히 신관은 화잇드헤드와 예수회 신부 떼이야르 샤르뎅의 과정철학 사상과 매우 가깝다.우주 자연의 진화적 과정,인간의 역사적 의식의 성장 ,그리고 절대적 내재-초월자 하느님은 서로 분리할수 없는 전체 생명운동의 세가지 이름에 불과하다.대승불교의 대승기신론의 용어를 따른다면 생멸세계와 진여의 세계는 서로 분리해 있는 것이 아니다. 우주가 자라며 생명은 고난을 통하여 새로움과 창조성을 체험해 가듯이 하느님도 그것들과 함께 그러하다.우주적 생명의 완성과 , 씨알 들의 온전한 구원이 이루어 지기 전에는 하느님도 창조적 산고를 감당 할수 밖에 없다. 함석헌은 종교사상가 였지만 이 시대의 그 누구보다도 자연과학에 깊은 관심을 가진 종교인이었다.미래의 종교는 과학과 화해하지 않으면 죽은 종교가 될것이라고 보았다. 넷째, 이 책은 한국사의 역사적 사건들과 역사적 인물들의 의미를 판단하고 해석하는 가치판단의 준거를 그 외양적 업적물로서 측정 판단하지 아니하고 진실과 공의(公義)라고하는 척도로서 판단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날엔 영웅이라 또는 구국의 지도자라고 칭송받던 김춘추,이성계같은 인물들이 이 책 안에서는 역사 도적으로 평가 절하 된다.반대로 역사의 실패자나 패배자라고 보이는 사육신 ,이순신 임경엽같은 인물들이 뜻으로서의 역사를 살려나가는 역사 계승자가 된다. 그것은 마치 예언자 사상에 영향을 받은 신명기 학파가 이스라엘의 역사를 서술하면서,하나님의 진실과 공의의 기준을 가지고 역대 왕들의 업적을 서술해가는 것과 같다.함석헌은 한국의 상고사와 고대사에서 한민족의 출발을 "당당한 출발"이라고 이름부친다. 일제가 주입시킨 식민사관을 철저하게 극복한 사관이다. 고구려가 망하고 고구려 대신 당나라 외세를 빌어 신라가 삼국울 통일 한답시고 반도 안으로 좁아들게 된것이 우리 역사 바둑판의 결정적 실착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는 만주의 넓은 벌이 중국 , 일본,한국 그 누구의 독점적 영토가 아닌 동북아시아의 새로운 공동체 질서가 어우러질 삶의 자리로 다시 재편성될것이며 또 그렇게 될 것이라는 예언자적 비젼을 50년 전에 이 책 안에서 내 놓았다.그의 에언적 비젼은 오늘날 조금씩 이뤄져가고 있으며 마치 유럽공동체(EC)처럼 넓은 만주 지역을 중심으로하는 동북아시아 문화-경제 공동체가 21세기에는 형성될 전망이기 때문이다.러시아 중국,한국 일본등이 참여할 계획인 두만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동만주지역의 공동경제개발 게획에 한국의 경제게가 단순한 짧은 손익게산서에 너무 메달리지 말고 거시적인 안목에서 적극 참여하고 투자했으면 좋겠다. 그 곳에 가보면 그 곳은 다른 나라 이국 땅이 아니라 치마 저고리 한 복을 입은 우리 동포 겨레 들이 고난의 역사속 잡초들처럼,끈질기게 삶을 이어가고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함석헌의 역사해석의 춘추직필은 정의와 진실을 기준으로 한다. 얼마나 경제성장을 잘시키고 근대화를 빠르게 잘 시켰는가의 관심이 아니라, 그 과정과 절차가 정의롭고 진실했는가를 묻는다.그러나 역사적 생명 안에서는 개인과 전체는 공동 운명체이기 때문에 그 죄값과 영광을 함께 받는다.
우리 사회는 힘든 일이나 고난이라는 말을 싫어하고 편한것과 괘락을 추구하는 생물학적 본능주의가 지배하는 일차원적 사회가 되어간다.모든 것을 능률성,실용성,합리성,경재성으로 그 존재가치를 판단하려 든다.지금 우리 시대는 극도의 개인주의와 집단적 이기주의가 발호하고, 집단적 이기주의의 또다른 형태인 국가 이기주의가 세계사의 전진을 가로막는 어두운 시대이다.역사적 사건의 겉만을 보고 그러한 역사적 사건이 일어날수 밖에 없었던 더 깊은 한국인의 집단적 정신세계의 해저지도,심층구조를 읽어내지 못한다. 이러한 불확정의 시대에 ,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는 우리들로 하여금 생명과 삶의 진실을 생각하게하는 현대 한국의 고전중의 하나라 하여 아무 잘못이 없을 것이다.
2.<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씨알, 역사, 그리고 하나님 우리는 위에서 함석헌의 명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가 씌여진 역사적 배경과 그 책이 지니고 있는 한국 현대사에서의 위치를 자리메김하여 보았다.이제 우리는 함석헌의 종교사상 중에서 그의 하나님 이해를 집중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왜냐하면 무릇 모든 종교사상가에서 구경의 문제는 그가 "궁극적 실재"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느냐에 의하여 결정적으로 그 특징이 규정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인간의 하나님 이해를 간단하게 말 할수는 없다. 하나님 이해는 그의 전 존재를 규정하는 문제이며, 그의 전 존재가 관여 되는 문제이며,인간의 객관적 논리와 언어적 표현으로서 다 서술해 낼수 없는 지극히 내면적인 영적체험의 주제이고 매우 실존적인 신앙 고백적 문제이기 때문이다.그러기 때문에 함석헌의 종교이해 중 그의 하나님 이해를 ,비교적 그의 초기작품으로 분류되는 "뜻으로 본 한국 역사"를 중심으로해서 살펴 본다는 것은 지극히 제한적이고 그의 신관의 일부분 일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의 <뜻으로 본 한국 역사>는 그의 가장 독창적인 사색이 절정에 도달했던 시기의 작품이며, 그 만큼 그의 순수한 하나님 이해가 피력되고 있다는 점이다. 뿐만 아니라,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안에 나타난 그의 하나님 이해는 아직도 가장 신선하고 과감한 하나님 이해를 하고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 이기도 하다. 앞절에서도 잠간 언급하였듯이 그의 하나님 이해는 정통적 교리적 기독교 신관을 넘어서면서도,가장 성서적 요소를 지니고 있으며,예언자적 전통에 서 있으면서도 현대 종교철학의 최첨단을 걷고 있는 화잇드헤드나 떼이야르 샤르뎅의 "과정신학적" 신관을 피력하고 있으며, 동북아시아의 정신사의 토양 속에서 노장사상과 화엄사상과 기독교 사상을 그의 혼의 용광로 속에서 지평융합시킨 매우 주체적인 하나님 이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의 하나님 이해를 그의 주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에 국한 시켜서 고찰한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신학적 사색을 풍요롭게하며, 신학적 발상법의 지평을 지극히 넓혀주는데 공헌할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함석헌의 종교사상,그의 역사이해에 영향을 주었던 사상적 배경 및 영향으로서 우리는 다음의 몇가지를 언급할수 있을 것이다.
첫째는 무엇보다도 성서 속의 예언자 사상이다. 그는 일찍 유년 시절부터 기독교에로 개종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성서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았다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다.<뜻으로 본 한국 역사> 그 골격적 구상이 제2이사야서의 "고난의 종의 노래"라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함석헌은 성경이 말하는 "고난의 종"의 신학적 의미를 이스라엘 역사 만이 아니고 한국사 전체속에 조명하여 보았던 것이다.성서의 에언자 정신은 오직 유일하신 하나님만을 하나님으로 경배하며, 그 이외 일체의 유한자들을 우상화 시키는 것에 대항하는 우상타파의 정신이며,하나님의 공의를 인간 역사적 진실 판단의 척도로서 요청하는 정신이며,하나님의 인애하심 못지 아니하게 하나님의 공의를 인간 공동체적 삶의 척추 등뼈로서 주장하는 종교정신이다. 둘째는 함석헌은 드물게 보는 동양고전에 통달한 학자였다. 특히 노자와 장자의 사상은 여러차례 공개강좌를 할만큼,성경 다음으로 그의 사상의 살과 피를 이루고 있다.노장사상의 어떤 점이 함석헌을 끌어 당겼을까. 흔히 노장사상이 말하는 무위자연 사상을 일반인들이 통속적으로 잘못 이해할 때는 인간만사의 귀찮은 역사현실을 떠나서 자연속으로 도피하여 자연과 벗하면서 살아가는 탈속적인 신선사상쯤으로 오해할수 있지만 노장사사의 본질이 그렇지 아니함을 우리는 알고 있다.노장사상은 당시 중국의 민초들의 고난,부국강병책을 주장하는 군주들의 통치철학, 이미 주도적 이데올로기로 부상하기 시작한 유가사상가들의 인위적 정치철학과 그 이데올로기 절대화를 이해하지 아니하고서는 노장철학은 이해 할수 없다. 다시 말하면 노장사상은 인간의 본래적인 존재의 모습을 억압하는 일체의 힘의 숭배사상,정치권력의 우상화,정치 이데올로기의 절대화,부국강병책 위에 선 국가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정신이요 그에 대한 저항정신의 표출이다. 그점에서 노장사상은 역설처럼 들리지만 예언자들의 우상타파정신과 일맥상통하는 공통점을 지닌다.다만 양자의 차이는 예언자들은 그들의 기후풍토 속에서 "역사"라는 범주를 축으로 삼고서 인간을 해방하시는 진리자를 증언했지만, 노장사상은 "자연"이라는 범주를 축으로 삼고서 그 일을 했던 것이다. 한마디 집고 넘어가야 할 점은 또한 노장사상은 중국사상사에 있어서 인도의 불교를 받아드려서 중국적 불교로 변화시켜 한국과 일본의 사상에 큰영향을 끼치었다.특히 노장사상 중에서 노자의 무위 공사상과 장자의 만물제동의 사상은 선불교와 화엄사상이 중국에 받아드려지고 토착화 되는데 토양 역활을 하였다.그런데 함석헌 선생은 노장사상에 깊은 이해를 하신 분이며 ,따라서 내놓고 많이 이야기 하시지는 아니했지만 화엄사상을 깊이 연구하셨음에 틀림없다. 화엄사상의 중요한 특징중 하나는 개체 안에 전체가 있다는 "一卽多,多卽一" 사상인데,함선생님의 사상 속에서 하나님-뜻-역사-씨알이 상호 불가분리적인 공속적 관계이며,역사의 책임에 있어서 개체와 전체의 관계를 강조하신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셋째는 간디의 불살생,비폭력,평화사상이다. 함석헌은 깐디를 흠모하였다. 해마다 깐디의 서거일이 되면 간디사상강좌를 주최하였다. 간디는 인도사상이 낳은 진주같은 "우주적 혼"(마하아트만)이면서 동시에 그는 신약성서 예수의 산상수훈을 ,힌두교의 경전 <바가받기타>와 함께 늘 품에 품고 애독하였다. 함석헌은 현대 국가주의의 공개적 집단살생행위인 전쟁을 반대하였다.함석헌은 국가주의는 철폐되어야 할 인류사의 낡은 찌거기라고 보았다. 함석헌 사상형성기 초기에 그가 영향받았던 일본 우찌무라(內村鑑三)의 무교회주의와 정식 작별하고 개신교의 작은 종파 퀘이커에 정식 입단하여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교 퀘이커교도로 살고 간것은 퀘이커가 지니고 있는 절대평화주의,종교의 형식보다는 내면적 신앙,그리고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운동에 공감하였기 때문이다. 넷째,그의 사상 형성에 직접적 영향을 준사람들로서 그가 언급하는 사상가들로서는 H.G.웰스,마찌니,내촌감삼,죠지폭스,떼이야르 샤르뎅등이지만 그 중에서도 그가 유일한 자기의 선생이라고 생각했던 다석 유영모선생 이였던 것을 우리는 주목한다.유영모의 종교사상 연구가 학계에서 주목을 받기 시작하며,그의 일기와 저술물들이 연구가들에 의해 조금씩 밣혀져가고 있기 때문에 함석헌과 유영모의 사상적 상호관계성은 일후에 연구가들의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사색을 깊이 파고 들어가서 독창적인 혼의 소리를 토해낸다는 점에서 유영모와 함석헌은 공통점이 있지만 ,함석헌의 사상 속에는 보다 열려져있는 우주적 개방성이 있다.그가 떼이야르 샤르뎅의 사상을 지극히 주목하고 ,종교사상가이면서도 현대 과학사상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도 그의 스승 유영모와의 사상적 차이를 나타내는 색갈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할 것이다. 유영모의 사상은 우주적 개방성이 없다는 말은 아니지만 유영모의 사상세계는 근본적으로 동양의 고전과 성서를 파고 들어간데서 형성되고 있다 할 것이다.
이상의 예비적 고찰을 마치고 우리는 이제 직접으로 함석헌의 주저 <뜻으로 본 한국 역사> 속에 나타난 그의 하나님 이해를 살펴보려고 한다.
함석헌은 이렇게 말한다: " 성경 예순 여섯권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하나님'이라는 한 말에 다 된다.곧 모든 것이,천사나 인생이나 자연이나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이 다 하나님께로 나왔고 ,하나님으로 말미암고,하나님 안에 뛰 놀고,마침네 하나님께로 돌아간다는 것이 성경의 근본주장이다.주장이라기보다 증거요 ,밝힘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은 은총의 하나님이다.우주 과정의 뒤에 있어서,그 흐름의 밑에 있어서, 그 생명의 속에 있어서,자기 몸소의 즐거움에서 역사를 지어내기 위하여 자기를 제한하여 만물 속에 나타내고 만물 위에 그 생명을 붓는 이다"(함석헌,뜻으로본 한국 역사,1983:43)
위의 인용문에서 우리는 함석헌의 하나님 이해는 매우 정통적 기독교의 핵심적 신관을 유산으로 물려받으면서도 동시에 정통적 초월신관을 초월하고 있음을 잘 알수 있다. 정통적 기독교 신관의 유산은 그가 하나님은 아무리 창조세계 안에 ,그것을 통하여,그것과 함께 더불어서 불가분리적으로 일하는 하나님이시만,이 창조세계가 곧 하나님 그 자신이라고 동일시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의 가장 깊은 순수한 마음의 중심에서 자신을 말하고 들어내지만 인간이 곧 하나님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초월성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 하나님의 초월성이란 시공간적 초월이 아니라 ,의미와 사랑과 자유로운 가치창조의 원천적 능력으로의 초월이다. 신은 그의 진정한 초월성으로 인하여 참으로 피조물 창조 안에, 그 생명과 존재구성과 관계성의 매 순간 순간 과정 속에 내재하고,창조적 새로움의 유인자로서 현존한다.그의 하나님 이해는 그래서 화잇트헤드의 과정철학적 신관을 몹시 닮았다.(Whitehead,Process and Reality,1978:342-351) 함석헌에 의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충만 안에서 한없이 자기를 비우며,피조물 에게로 자기자신을 한없이 내어주는 아가페 그 자체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은총의 하나님이다.자기를 스스로 제한하여 비움으로 만물을 충만함으로 체운다.그의 사랑의 메임때문에 하나님은 피조물들의 고통과 아픔을 초연할수 없다. 사랑의 본질은 그럴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도 이 세계,곧 피조물의 산고의 고통과 함께 고통하고 창조의 기쁨을 함께 나눈다.하나님은 그 모든 과정을 초월해있는 절대 군주적안 초월자도 아니고,철학적인 제일 원리도 아니고,모든 감정을 초월해있는 "不動의 動者" 도 아니다.
그러므로 함석헌의 하나님이해는 하나님은 하나의 "무제약적인 한 뜻" 이다. "뜻"이라는 우리글의 순수한 말은 단순한 의지라는 말과도 다르고 계획이라는 말과도 다르다. 그것은 자유혼의 영적 생명의 창조적 어떤 지향성이며,사건화의 시발점이며,시공간의 구체화 안에서 화육의 사건으로 펼쳐져나아가는 무한 영원한 가능성이다. 뜻이 곧 현실은 아니지만 뜻없는 현실은 거져 검불들의 집적물이다. 그래서 함석헌의 하나님 이해는 역사라는 범주로서 파악되는 이 창조적 과정의 현실총체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함석헌은 역사와 하나님과의 상관관게를 이렇게 말한다.
" 변하는 역사는 한개 자람이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자람이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에는 단계가 있다. ....역사는 영원의 층계를 올라가는 운동이다.영원의 미완성곡 이다.하나님도 죽은 완성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영원의 미완성이라 하는 것이 참에 가깝다.그렇기 때문에 만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요,그렇기 때문에 역사의 바퀴가 구르는 것이다.....역사는 결코 꼭같은 것을 영원히 되풀이 하는 것은 아니다.그것은 어디까지나 산(生) 것이기 때문에 그 운동은 그져 되풀이 되풀이 끝없이 하는 운동이 아니요, 자람이다. 생명은 진화 한다.적게보면 되풀이 하는 듯하면서 크게보면 자란다....그러므로 역사의 운동은 차라리 수레바퀴나 나선의 운동으로 비유하는 것이 좋다. 수레의 바퀴는 밤낮 제자리를 돈 것 같건만 결코 제자리가 아니라 나간 것이요,나사는 늘 제 구멍을 돌고 있는 것 같은데 사실은 올라가는 것이다."(함석헌,1983:57)
위의 인용문을 가만히 음미해보면 함석헌의 신관과 역사관이 얼마나 혁명적인가를 이해 할수 있다. 그리고 동시에 그의 실재관이 얼마나 기독교의 영향을 받고 있는 가를 알수 있다. 그는 역사를 자람이라고 본다. 생명의 제일 원리는 "스스로 함"이기 때문에 역사는 단순한 경제적,정신적,게급적 법칙데로 굴러가는 철도레일 위의 행진이 아니다. 그것은 자유의 광장이다. 여기에 만물의 실재를 창조적 과정이라고 보는 기독교적 실재관의 특징이 나타난다.다시 말하면 시간의 불가역성을 그 중심으로하는 서구사상의 특징이요 히브리적 사유의 특징이 그의 동야적 사유와 지평융합을 이루면서 자연스럽게 접목하였다. 노장사상과 불교사상과 유가의 자연철학은 일찍부터 만물의 움직임과 그 되돌아옴,그 주기성과 반복성에 주목하였다. 자연 그 자체, 진리 그자체,법 그 자체는 이미 가장 완전무결한 절대완전에 도달해있기 때문에 변하는 것은 오직 현상계 뿐이라고 보는 일체의 동양적 사유는 ,"역사적 실재" 가 지니는 시간의 불가역적인 과정성의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데 있어서 약하다. . 그런데 함석헌은 역사는 영원한 자람이며, 무한 층계의 오름이며,영원의 미완성이라고 한다. 역사라는 몸을 입고 자기를 현실생명 속으로 부어넣는 하나님도 따라서 영원의 미완이라고 보는 것이 차라리 참에 가깝다는 그의 말은 다시한번 화잇드헤드의 과정철학을 연상하게 한다. 하나님이 불완전한 존재라는 말이 아니다. 하나님은 그 스스로 영원한 절대자유로서 온전하지만 ,이미 피조물 곧 현실세계,현상세계,역사와 관련을 가진 이상 하나님은 이 현실세계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게 된다. 불교의 화엄사상, 특히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저자의 논지와 그것의 해설서 주석서인 원효의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의 표현을 빌리자면,진리 그자체의 영원한 법은 본질적,불변적,영원적,"진여문"(眞如門)이라고 부르는 존재양태가 있고, 현상적,변화적,시간적 "생멸문"(生滅門)이 있는데,불교는 생멸문의 비본질적 현상은 망집과 집착과 무명(無明)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본래적 진여의 모습으로 돌아가고,본래부터 영원히 거기에 있는 진여의 모습을 회복하기만 하면 구원인 것이다. 그러한 화엄불교의 중심멧시지는 위대한 종교사상임에 틀림없지만 거기에는 새로움의 미래가 없다. 미완성의 자람이 없다.여기에 불교사상의 위대함과 그 유형적 특징이 있다. 그러나 함석헌의 강조점은 하나님의 불변적 속성,영원한 원형적 본질보다는 역사현실과 관계되어 끊임없이 역사의 창조적 산고를 스스로 함께 맛보며 감내하는 "생멸문"으로서의 시공 안에 있는 하나님을 주목한다.그래서 함석헌의 하나님 이해는 관념적으로 들리지 아니하고 육신을 가진 사람들의 가슴에 와닿는다. 그래서 그의 역사철학은 단순한 존재의 해석이나 명상이 아니라,왜곡되고 병든 역사현실을 비판하고 저항하는 역사개혁의 저항자,비판적 참여의 지성,수난을 감내하는 종교적 지성의 실천이 뒤따른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역사를 지어가는 역사의 담지자는 누구인가.역사의 담지자는 하나님과 함께 공역하는 동반자요 함께일하는 자일 것이다. 여기에서 함석헌은 그의 독특한 사관 곧 씨알사관을 내세운다.
" 한국역사는 오직 한국사람,한국 씨알의 역사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역사가 고난의 역사라면 우리는 그 "우리"를 지리에서만이 아니라 그 보다도 더 깊이 한국사람에게서 찾지 않으면 않된다. 하늘과 땅 사이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가슴 속에서 찾아야 한다.하늘과 땅은 가슴의 껍질일 뿐이요,거기가는 길일 뿐이다."(함석헌,같은책:85)
함석헌의 종교사상에서 하나님,뜻,역사,씨알은 상호 공속개념이다.공간적 기하학적 도형을 비유로해서 말한다면 실재(Reality)를 저 위 꼭대기에서 보면 "하나님"이고, 맨아래 바닥에서 보면 "씨알",맨사람들이고 그것사이의 과정에서 보면 "역사"이고,그 역사의 중심을 꿰뚫고 흐르는 의미에서 보면 "뜻"이다.하늘과 땅은 삶의 핵인 씨알의 생명을 감싸고 있는 씨앗의 껍질이다.그러므로 기독교의 새 하늘 새땅 ,종말의 신천신지는 백두산이나 계룡산에 임하는 것이 아니고 씨알들의 가슴에 임한다.씨알의 가슴에 하늘나라가 임하기 전에는 절대로 종말은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한부 종말론을 문자적으로 믿고서 구름타고 재림하실 에수님을 기다리는 한국 기독교인들의 일부 몰지각한 행동은 성경을 껍질로 잃을 뿐 뜻으로 읽을 줄 모르는데서 나오는 우리 시대의 비극이다.
[3] 맺는 말
함석헌은 한국 개신교 100년만에 낳은 매우 독창적이고 심오한 기독교사상가이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계와 신학계는 그의 진정한 공헌을 모른다. 단순히 그가 초창기에 가졌던 무교회주의자 였던 것을 빙자하여,또는 그가 기성교회의 형식적 종교와 종교타락 현상에 대한 에언자적 질책이 몹시 못마땅해서 함석헌,그를 20세기의 광야 들판에 그대로 버려둔체 있다. 이 신학적 엣세이는 한석헌의 종교사상가로서 그의 중요한 의미를 한국 기독교계 및 신학계가 재평가하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쓰여졌다. 그러므로 그의 하나님 이해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일 뿐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의 무수히 많은 종교시 속에서, 그의 후기 사상 속에서,그의 노장사상의 주석서와 강해 속에서 우리는 성숙한,그러나 주체적으로 토착화된 한 한국 그리스도인의 진지한 삶의 신앙 발자취를 추적해가야 할 것이다. 그러면 그의 선구자로서의 영혼의 밭갈이는 우리모두를 풍요롭게하는 "씨알들의 먹거리"가 될 것이다. 그는 한국 현대역사 들판에서 외롭게 서있는 "들판의 소리"로서 만이 아니라 엄청난 "한국적 신학의 광맥"으로서 지금도 뜻있는 한국인들의 접근을 기다리고 있다.
[참고서적]
1. 함석헌 ,뜻으로 본 한국역사,함석헌전집,제1권(한길사,1983년,제1판) 2. Whitehead,Process and Reality(The Free Press,1978) 3. 이홍우,大乘起信論(경서원,1991) 4. 율겐 몰트만, 창조안에 게신하나님(한국신학연구소,1991) 5. 김경재, 씨알들의 믿음과 삶(나눔사,199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