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21세기의 사상
오늘 우리는 지구화와 생명파괴의 위기 속에 살고 있다. 서세동점의 5백년 역사를 거쳐 세계시장경제와 정보통신혁명으로 지구화가 급속히 진전되면서 인류사회는 인종과 국가(민족), 지역과 종교문화의 대립과 갈등으로 혼란을 겪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문명과 생명공학의 발달로 인간의 정신과 영성은 위축되고 공동체 파괴와 생명파괴가 급속히 이루어지고 생명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된다. 21세기는 전지구적인 전망을 지닌 사상, 한민족의 정신과 역사적 경험에서 우러난 사상, 상생평화의 사상, 깊은 믿음과 생각이 통일된 사상을 요구한다.
21세기에 함석헌의 씨 사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험난한 민족사 속에서 지성과 양심을 곧게 지키며 깊고 넓은 독창적 사상을 펼쳤던 함석헌은 민족의 큰 사상가요 겨레의 큰 스승이다. 그러나 그 동안 한국학계와 언론계는 자유당 정권과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민주인사로 그를 기억하고 평가할 뿐 그의 사상을 연구하고 평가하는 데는 인색했다.
연세대 신학대학 명예교수인 유동식 박사는 '대표적 한국인'이라는 글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로 원효와 율곡과 함석헌을 꼽았다. 이 세 사람은 각기 불교, 유교, 기독교에 뿌리를 두면서도 자기 종교의 울타리에 매이지 않고 자유로우면서도 '큰 하나됨'(한)을 추구한 종합적인 사상가들이고 이론에 머물지 않고 실천하고 행동한 사상가들이라는 점에서 한국의 대표적 사상가들이라고 할 수 있다. 유동식은 세 사람 가운데서도 함석헌이 동서문명이 만나는 세계적인 지평에서 창조적이고 종합적인 사상을 펼쳤다는 점에서 더욱 위대하다고 보았다.
함석헌은 자신의 삶과 민족의 삶에 충실하면서도 전지구적 전망을 가지고 생각하고 실천했던 뛰어난 사상가이다. 21세기의 화두가 '세계화'와 '생명'이라면 함석헌이야말로 평생 '세계화'와 '생명'이란 주제를 놓고 생각하고 글쓰고 행동했던 사상가이다. '씨 '이란 말이 생명과 지구적 보편성을 담고 있다. 또한 그는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된 이래 늘 새로운 시대를 내다보며 생각하고 행동했다. 그런 점에서 그의 사상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21세기, 새 시대의 사상이다.
1. 서구문화와 동양문화의 융합을 추구한 철학
함석헌은 개인의 인격과 영혼을 쇄신하는 기독교 신앙을 깊이 받아들이고 서구의 현대학문으로부터 자유와 평등을 강조하는 비판적이고 저항적인 정신을 익힘으로써 역설적으로 겨레의 얼과 혼을 옹글게 살려낼 수 있었다. 함석헌은 평생을 두고 민족혼을 실현하려 했지만 민족주의에 머물지 않았다. 그는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넘어 서서 세계평화주의를 지향했다. 서구문명이 주도한 지구화와 기술.생명공학의 발달로 생겨나는 혼란과 혼돈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정신과 영성을 지닌 새 인간이 나와야 한다. 새 인간은 동양의 명상적 종합적 사고와 서양의 분석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아우르는 인간이라고 보았다. 함석헌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유교와 불교와 같은 동서문명의 폐해를 가장 잘 아는 한국인이 동서문화를 종합할 자격이 있음을 시사한다.
함석헌은 일원(一元)과 이원(二元), 몸과 맘, 얼과 살이 통전된 새 철학, 세계를 통일하는 세계정부, 동서문명의 통일을 꿈꾸었다. 그에 따르면 "모든 민족 모든 문화가 '한'(전체)에서 나왔고 '한'(전체)을 목표로 나아간다." 더 나아가서 세계통일이 "역사발전의 등허리 뼈"다. 종교는 "몸과 마음이 하나됨...국민이 하나됨...만물과 하나님이 하나됨을 이루자는 것"이며, 나와 하나님을 하나되게 하는 믿음이 "모든 통일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교육은 그 하나를 찾고, 정치는 그 하나로 나가는 길을 열고, 예술은 그 하나의 깃발을 그리고, 종교는 그 하나이다." 그는 역사와 문화의 근본이 통일(하나됨)에 있고, 모든 통일의 근본은 종교(신앙)에 있으므로 어떤 문화도 종교로 일어났고 종교로 망했으며, 역사적 변동의 원인은 종교에 있다고 한다.
'하나됨'을 역사, 문화, 종교의 근본으로 보고 세계통일을 지향한 것은 유일신관(Monotheism)에 기초한 기독교적 세계주의를 반영한 것일 뿐 아니라, '크게 하나임=한'을 추구하는 한민족의 민족혼과 원형적 정신을 반영한 것이다. 일치와 동화를 추구하고 '한'을 추구하는 민족혼의 고유한 정신이 세계통일과 세계주의로 나가는 근거로 제시된다. "모든 것을 끌어안아 하나되게 하는" 집일함삼(執一含三)과 회삼귀일(會三歸一)을 추구하는 민족혼의 원형질('한')이 기독교신앙과 서구사상을 포용할 뿐 아니라 동서문명의 사상적 통일을 위한 바탕이 될 수 있음을 함석헌은 시사한다.
2.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 피어나고 형성된 풀뿌리 민주철학
씨 사상은 일제의 식민통치와 군사독재에 맞서 싸운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서 닦여져 나온 풀뿌리민주철학이다. 씨 사상은 한민족의 삶에서 우러난 주체적이고 실천적인 철학이다. 그의 말대로 "우리 삶에서 글월이 돋아나지, 공작의 깃 같은 남의 글월 가져다 아무리 붙였다기로 그것이 우리 것이 될 까닭이 없다." 참된 사상과 철학은 민족과 민중의 삶에서 우러나야 한다. 함석헌은 3.1운동에 참여한 후 오산학교에서 공부하고 가르쳤다. 안창호는 나라가 망해가던 1907년에 한국에 돌아와 비밀독립운동조직인 신민회를 구성하고 교육으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고 보고 교육운동을 일으켰다. 남강 이승훈은 신민회 평안북도 조직책임자로서 오산에서 민족사학을 세웠다. 신민회의 핵심멤버인 여준이 학교를 이끌었고 신채호 등이 참여했다. 안창호, 이승훈, 여준, 조만식, 유영모, 함석헌이 이끈 오산학교의 정신은 민족독립정신과 기독교신앙과 민주정신이 결합된 것이었다. 중국의 정치문화와 지배층에 의해 오랫동안 짓눌려 있던 민족의 혼과 얼이 개인의 영혼과 인격을 쇄신하는 기독교 신앙과 비판적이고 자유로운 민주정신에 의해 일깨워졌다. 오산의 설립자 이승훈은 3.1운동의 실질적인 주도자였고 오산학교는 3.1정신의 본산이었다. 3.1운동의 정신과 이념은 건국의 정신적 토대이자 헌법정신의 원점이다. 오산정신을 이어받은 함석헌은 평생 돈욕심, 자리욕심 내지 않고 민족과 진리를 위해 살았다.
안창호, 이승훈, 조만식, 유영모의 삶과 정신과 사상을 이은 함석헌의 삶과 사상은 4.19혁명과 60-70년대의 민주화운동, 장준하, 문익환, 안병무, 계훈제, 김대중으로 이어졌다. "같이 죽고 같이 살자, 좋다 좋아"하는 노래를 즐겨 불렀던 함석헌의 사상은 개인의 독창적인 사상에 머물지 않고 민족의 민주화운동에서 피어난 민족적인 민주사상이다. 해방 후 한국의 철학계와 사상계는 신채호, 정인보, 최남선, 유영모가 일제시대부터 닦아낸 민족주체적인 한국사상과 단절된 채 주로 외래사상과의 교류 속에 발전해 왔다면, 씨 사상은 주체적인 한국사상의 맥을 이어서 현대적으로 발전시킨 한국적인 풀뿌리 철학이다. 씨알사상은 한민족의 얼과 혼을 일깨움으로써 민족자주와 민주화를 이루려 했다. 함석헌은 겨레 얼을 '한' 혹은 '??'과 직결시킨다. 함석헌에 따르면 '한'은 우리 겨레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고 '한님, 하나님', '한울'(하늘)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한 혹은 ?坪? 우리 정신생활의 등뼈다. 우리 사람은 한 사람이요, 우리나라는 한 나라요, 우리 문화는 한 문화다. 그리고 그것을 인격화하여 대표하는 것이 한님 곧 하나님, 환인(桓因)이다."
씨알사상은 자연생명과 역사와 종교(신앙)의 근본원리를 '스스로 함'으로 보고, 특권을 누리지 않는 보통 사람인 씨알을 나라와 역사의 주체로 본다. 씨 이 나라의 바탕이고 중심이다. "새 나라는 '나'에서 시작이다. 내(씨 )가 나라다. 루이 14세는 그 말하면 죄지만, 바닥에 있는 씨알이 하면 당당한 말이다." 그러므로 씨 에게 근거하지 않은 혁명은 성공할 수 없다: "민중과의 호흡이 끊어진 순간 혁명의 힘도 끊어진다. 장자가 '참 사람은 발꿈치로 숨을 쉰다.' 한 것은 이것일까? 민중이 뭐냐? 하나님의 발꿈치, 나라의 발꿈치지." 씨 하나 속에 수억 년 지나온 생명의 역사가 담겨 있고, 앞으로 펼쳐질 수억 년 생명의 미래가 들어 있듯이, 한 인간 속에는 과거 역사와 미래 역사가 담겨 있다. "너는 씨 이다. 너는 앞선 영원의 총결산이요, 뒤에 올 영원의 맨 꼭지다...지나 간 5천년 역사가 네 속에 있다."
씨 속에 하늘의 생명기운이 맺혀 있듯이, 역사와 사회의 밑바닥에서 수 천년 동안 온갖 고난과 시련을 당하면서 민족의 삶을 지탱해 온 민중 속에는 큰 힘과 지혜가 숨겨 있다. 함석헌은 "민중의 본바탕을 밝혀 내기만 하면 큰 기적을 행할 수 있다."고 했다. 함석헌은 지배자들이 돌이나 책에 기록한 문화와 역사에 의존하지 말고 민중의 가슴과 삶에 새겨진 문화와 역사를 살려내라고 했다. 민중의 삶과 문화 속에 민족의 정신과 역사가 들어 있으므로, 모든 정치가와 종교지도자는 민중을 가르치기 전에 민중에게 겸허히 배워야 한다. 그러므로 먼저 씨 이 말하게 하고 씨 의 소리를 들어야 한다. 민중과 유리된 정치는 반드시 타락하고 민중을 떠나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고 했다.
3. 생명평화철학
씨 사상은 생명평화철학이다. 함석헌은 씨 의 생명원리를 '스스로 함', '자람'(새로움), '전체(큰 하나)를 이룸'으로 파악했다. 그는 생명과 역사와 신을 자란다는 시각에서 보았고 변화발전생성의 동적 성격을 '...려함'으로 나타냈다. '...려함'은 새로운 삶을 향해 솟구치는 생명의지를 나타낸다. '스스로 함'과 '...려함'으로 나타나는 주체적인 생명의지와 자연생태친화(無爲自然)적인 평화주의가 결합되어 비폭력 저항의 평화주의로 나타났다. 한국인의 민족적 성품과 종교문화적 성격은 평화주의적이다. 함석헌에 따르면 자연환경의 아름다움과 '한'(큰 하나됨)을 추구하는 민족정신이 만나서 신선사상과 평화주의가 나왔다. 자연(하나님, 영원)과 하나됨을 추구하는 민족정신이 도통과 초탈을 추구하는 신선사상으로 나타났고, '한'을 추구하는 착한 마음이 함께 살려는 평화주의로 나타났다. 도통과 초탈을 추구하는 자연친화적인 신선사상은 적을 포용하고 더불어 사는 평화주의와 맞물려 있다.
함석헌은 개체로서의 씨 과 전체를 직결시킴으로써 당파주의.집단주의를 철저히 배격했다. '내'가 전체(하나님)와 직결되어 있으며, 모든 인간이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당파요 집단이다. 당파주의나 집단주의는 '다른' 사람들을 부정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폭력적일 수밖에 없다. 그에 의하면 실제로는 당파주의.집단주의이면서 전체를 표방하고 씨 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게 국가주의이다. 이 국가주의가 개인과 전체를 희생시킨다. 폭력적이고 배타적인 집단적 당파주의에 대한 그의 비판은 세계평화주의로 이어진다. 앞으로의 세계는 "어쩔 수 없이 유기적인 사회, 전체사회가 돼서 미워도 고와도 한데 살 수 밖에 없게 되었고, 그렇지 못하면 전체가 멸망하게 돼 있다." 전체와 직결되어 있고, 전체를 품고 있는 씨 은 평화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고 '하나의 세계'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함석헌의 비폭력투쟁은 상대(적)에 대한 두려움이나 미움없이 상대에 대한 사랑과 신뢰를 가지고 하는 싸움이다. 그의 비폭력 평화주의는 깊은 신앙과 종교적 깨달음에서 나왔다. 함석헌은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이 "생명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핀 꽃"이라고 한다. 함석헌은 원수사랑을 "서로 사랑으로 싸우라"는 말로 이해한다. 그는 믿음과 사랑의 마음으로 보면 대적 자체가 없다고 했다. 비폭력투쟁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기고 짐을 초월한 마음'으로 싸워야 한다. 이 싸움은 이기기 위해 싸운다기보다 마음 속에서 적을 이겨 가지고 싸우는 싸움이다. 또한 함석헌의 평화주의는 한국민중의 역사적 삶에서 우러난 것이다. 지난 역사 속에서 남을 억압하고 수탈하는 지배 엘리트들이 전쟁을 일으켜서 죽이고 파괴했다면, '스스로 하는' 민중들은 농사짓고 건설함으로써 평화를 이루었다: "나라를 건진 사람은 사람 죽인 사람이 아니라 그 시체를 치우고 또 씨를 뿌리고 또 갈고 말이 없는 그들 이름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역사의 모든 짐을 다 지면서도 이름 앙탈도 자랑도 없는 이름 모를 사람들입니다." 지배자들로부터 고난을 당하면서도 씨 은 지배자들이 파괴하고 더럽힌 공동체적 삶을 지탱하고 정화하는 구실을 했다. 오 천 년 민족사 속에서 평화적인 삶을 몸으로 익힌 씨 은 비폭력 투쟁을 통해 민족과 인류의 평화 공동체를 실현할 저력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씨 의 자연생명에 근거해서 역사와 영성(종교)을 포괄하는 함석헌의 생명평화철학은 80년대와 90년대에 문익환, 김지하, 박노해로 이어진다. 70년대부터 민주화운동의 전면에 서서 치열하게 싸우면서 역사와 사회의 나락인 감옥을 경험했던 문익환, 김지하, 박노해가 똑같이 풀씨 하나로부터 자연생명과 역사와 영성, 몸과 정신을 꿰뚫는 생명평화사상을 말하고 있다. 함석헌을 비롯해서 이들은 모두 삶의 나락에서 생명에 대한 절대긍정을 하게 되고 생명에 근거한 공동체적이고 통합적인 평화철학, 공존과 상생의 평화사상을 시사한다. 이런 점에서 씨 사상은 한민족의 역사적 체험과 집단적 통찰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3.1운동과 4.19혁명으로 이어지는 한국민주화운동도 크게 보면 평화주의의 원칙을 지켜왔다. 일부 시위대가 화염병을 던지고 각목을 휘둘렀고, 광주민주화운동에서 집단학살에 맞서 자연발생적인 무장저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오랜 세월 격렬한 민주화투쟁을 거치면서도 지속적으로 군사적인 무장을 하거나 군사적인 저항을 하지도 않았고, 테러 행위도 없었다. 이른 바 재야민주인사들의 주류는 비폭력평화의 원칙을 지켰다. 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시절이나 대통령으로 있을 때나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일관성 있게 내세운 점은 매우 인상깊은 일이다. 해방 후 50여년 동안 줄기차게 민주화운동을 벌여왔으면서도 비폭력 평화의 원칙을 지킨 것은 세계민주화운동사에서 이례적인 것으로 판단된다.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평화상을 탄 것은 한국민주화운동의 비폭력 평화주의가 평가받은 것으로 여겨진다. 여기에는 함석헌의 비폭력 평화사상이 큰 기여를 했다고 본다.
4. 믿음과 생각의 통일
함석헌은 서구의 주객이원론적 사고법을 비판하고 '나 자신'을 문제의 중심으로 보고 해결의 열쇠를 '내' 속에서 찾는 주체적 사상을 형성한다. '크게 하나됨'(세계화), '스스로 함'(민주화), '비폭력 평화주의'(생명평화)는 결국 개인과 민족의 '나'를 바로 세우는 문제로 귀결된다. '나'는 깊은 생각과 믿음으로만 세워진다. 함석헌은 한민족의 역사적 숙제를 통일정신, 독립정신, 신앙정신으로 보고 이 셋은 "작은 생각 버리고 크게 하나되"는 데 있다고 보았다. 한겨레가 뜻을 잃고 하나됨에 이르지 못한 까닭은 '스스로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정치하는 사람들이 "남의 생각을 빌어다 쓰는 것으로 만족하고 스스로 제 생각을 하려 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될수록 백성을 눌러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고 자기네도 중국생활을 빌어다가 손쉽게 해먹으려고만 했다." 좋은 정치는 "백성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한민족의 가장 아쉬운 점은 '생각의 빈곤'에 있다고 보았고, 한민족의 과제는 "깊은 종교를 낳고, 생각하는 민족이 되고, 철학하는 백성이 되는 것"이다. 깊은 생각과 굳센 믿음을 가질 때 주체적인 자아가 확립되고, 민족이 하나로 되고 인류가 하나로 될 수 있다.
믿음은 개인적인 자아를 넘어서 전체의 자리에 서는 것이다. 함석헌에게는 믿음도 생각을 통해서 주어진다. 생각 자체가 '하는 생각'(이성적 사고)과 '나는 생각'(신앙적 영성)으로 나뉜다. 생각을 해야 생각이 나고 또 생각이 나야 생각을 할 수 있다. 믿고 생각함으로써 한 사람, 한 마음, 한 얼(민족혼), 한 누리(지구공동체, 인류세계), 한 카한(하나님)이 하나로 통한다. "믿으면 하나님이 내 속에 말씀하신다." 함석헌에게는 생각이 삶과 믿음의 조건이다. 함석헌은 1950년대 후반부터 줄기차게 "생각하는 씨 이라야 산다", "죽어서도 생각은 계속해야 한다"고 외쳤다. 생각해야 살 수 있고 생각해야 믿음에 이를 수 있다. 과학과 충돌하는 신앙도 하나님을 떠난 현대문명도 잘못된 것이다.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스스로 하는' 자율성의 영역이 급속히 확대된다. 유전자조작과 생명복제와 같은 문제는 주체적이고 책임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주체적이고 성숙한 책임성은 깊은 믿음과 생각에서 나온다. 생각함으로써 운명적인 삶에서 '스스로 하는' 주체적인 삶으로 바뀌고 지역과 집단으로 갈라진 겨레가 하나로 된다.
마치는 말
함석헌은 동서문명의 결합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는 시기에 일제의 식민지배와 군사독재 아래서 민주적이고 독창적인 사상을 펼쳤다. 함석헌은 한민족의 정신적 원형질인 '한'을 바탕으로 기독교사상, 동양철학, 서구의 비판적 사고와 저항정신을 받아들임으로써 자연, 역사, 종교를 아우르는 씨 사상을 펼쳤다. 함석헌의 사상은 씨 (民)을 역사와 사회의 주체로 놓고 씨 을 하늘처럼 섬기는 풀뿌리 민주철학, 모든 문제와 일의 중심에서 '나'를 문제삼는 주체철학, 겨레의 얼과 혼을 추구한 민족철학, 한국.동양의 정신문화와 서양의 정신문화를 융합하려는 세계철학이다. 그의 사상은 생각(과학)과 믿음(종교), 몸(육체)과 영혼(정신), 자연과 역사, 삶(실천)과 이론(학문), 남한(자본주의)과 북한(공산주의)의 통일을 추구하고 국가와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넘어 세계정부를 꿈꾸는 통일철학, 기독교에 바탕을 두면서도 기독교 울타리를 넘어서 유교.불교.도교.힌두교에 두루 통하는 보편적인 진리의 자유로운 세계를 열었던 종교다원주의 철학이다.
21세기에 함석헌 사상이 지닌 의미는 무엇인가? 첫째 그 동안 한국의 학자들은 외래문화, 사상, 이론에 묻혀 우리의 삶에서 우러난 주체적인 사고를 하지 못했고, 5천년 민족사와 지구화의 흐름이 마주치는 오늘의 현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는 사상과 글이 없었다. 이른 바 강단의 학자들 사이에서는 몸과 정신, 이론과 실천, 믿음과 역사와 자연생명세계를 하나로 꿰뚫는 사상이 나오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 서구세력과 불의한 지배세력에 맞서 자유와 평등을 위해 몸부림치는 민족과 민(民)의 삶에 근거한 주체적이고 해방적인 사상을 펼칠 수 있는 용기와 정성이 부족했던 게 아닐까?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함석헌은 한국적이면서 세계적인 전망을 갖고 글쓰기를 했고, 민중과 민족의 삶에서 우러난 사상을 펼쳤고, 신앙과 과학, 몸과 정신, 이론과 실천, 믿음과 풀뿌리 민주주의와 자연생명세계를 아우르는 글쓰기를 했다. 함석헌이 남긴 수 많은 글들은 인문학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인문학적 이론과 상상력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둘째 오늘날 한국인은 사상과 가치관의 큰 혼란 속에 있다. 일제식민지배와 남북분단과 전쟁, 군사독재를 거치면서 역사와 정치의 왜곡과 파행이 극에 달했으나 사회적으로 옳고 그름을 한번도 제대로 짚지 못했고 불의와 거짓에 쌓인 과거를 청산하지 못했다. 지역감정과 지역적, 정파적, 집단적 이기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수구언론은 냉전적이고 반동적인 사고를 부채질하기도 한다. 정치인들 사이에 억지소리와 궤변이 난무한다. 오늘 우리에게는 지난 역사와 정치현실의 옳고 그름을 밝힐 수 있는 거울이 필요하다. 함석헌의 글은 지난 역사와 정치현실의 옳고 그름을 비추는 거울이다. 민주시민으로서 바르게 생각하고 판단하려면 함석헌의 글을 국민독본으로 삼고 읽어야 한다.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대학교에서 민주화와 민족통일 시대에 맞는 건전한 민주 시민교육과 인성교육을 하기 위해서도 낡은 시대의 교과서를 개편하고 함 선생의 글을 교과서에 실어야 할 것이다.
셋째 오늘의 세계적인 화두는 지구화와 생명이다. 지구화와 생명파괴의 현실은 지구공동체적인 전망, 자연생명친화적인 사고와 자세를 요청한다. 함석헌의 글에서 민족과 종파의 울타리를 넘는 세계시민적 관점을 익히고 자연친화적인 생명이해를 배울 수 있다. 20세기 한국이 낳은 큰 사상가 함석헌의 삶과 사상은 큰 산과도 같고 깊은 강물과도 같다. 그에게서 삶의 용기와 민주정신을 배울 수 있고, 깊은 믿음과 생각을 접할 수 있다. 그의 아름다운 삶과 큰 사상은 민족통일과 지구화로 나가는 길목에서 헤매는 한민족의 마음을 품어주고 이끌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단법인 함석헌 기념사업회 ssialsori.net |